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초인실궁- 우리집 텃밭 이야기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 한편


초인실궁초인득지楚人失弓 楚人得之 


초나라 사람이 잃은 활은 초나라 사람이 얻을 것이니 
찾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도량이 
그다지 넓지 못함을 이름 

초(楚) 나라 공왕(恭王)이 사냥을 갔다가 그만 그가 
아끼던 활을 놓고 왔다. 
늦게서야 알고 여러 신하들이 가서 찾아오기를 청했으나 
왕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초나라 사람이 주울텐데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느나?" 
공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공자는 몹시 애석해 했다. 
"공왕의 말이 옳기는 하나, 왜 생각이 좀 더 
크지는 못했을까? 
이왕 말할 바에는 '사람이 잃은 활을 사람이 줍는다.' 라고 
하지 않고 하필이면 초나라 사람이라 했을까?" 


내가 가끔씩 집에 들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텃밭을 둘러보는 일이다.

봄에 심은 상추며 쑥갓, 고추와 케일, 그리고

호박이 성큼성큼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그것을 수확해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행복감을 맛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3 주 전에 집에 들려 텃밭을 둘러 볼 때였다

철망까지 두른 텃밭 안에서

내 팔뚝만한 토끼가 상추를 입에 문 채

내가 침입자라도 되는 듯 

의심과 우려가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 보는 게 아닌가.

자기 터에 누군가가 와서 둘러보는 게 영 못 마땅한 투였다.


텃밭은 우리 땅이고

우리가 그 모든 채소를 심고 거름을 주어서

분명 우리 소유였건만

인간 사회의 법칙이 동물 사회까지 유효하진 않았다.

경찰을 불러 침입자를 쫓아내고

아울러 민 형사 상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니 내 속만 타 들어갔다.


나는 이 사실을 농장주(아내)에게 즉각 보고를 했다.


그러나 농장주는 아리조나에 있었고

당장 뛰어 올 수도 없으니

그 더운 곳에서 냉가슴을 앓아야 했을 것이다.


나는 그 토끼가 어디로 들어 왔는지

알기 위해서 내 기민한 머리를 활용했다.

텃밭으로 들어가 문을 꼭 잠그고 토끼를 쫓았다.

도주로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토끼는 그 작은 철망에 난 구멍으로 머리를 들어 밀더니

이어서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마치 장이 운동을 하듯 

꾸불렁 꾸불렁 텃밭을 빠져 나갔다.


아 자연의 신비, 

동물의 왕국은 나라는 인간이 알지 못 하는

신비의 세계임을 깨달았다.


아리조나에서 돌아 온 농장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돌입했다.

나일론으로 된 모기장 같은 망을

그 더운 날 텃밭 둘레에 야무지게 둘렀다.

아무리 작은 토끼도 그 모기장 같은 망을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우리는 안도와 승리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렴 일개 동물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머리를 따라 올 수 있으려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신비한 동물의 세계 후편이 그 다음 주일 집에 갔을 때도

여전히 방영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다시 자지러져야 했다.

상추며 케일의 잎이란 잎은 다 칼로 베어낸 듯이 먹어치운 것이다.


토끼란 놈들이 미나리꽝 속 으슥한 곳에

토끼굴을 짓고 거기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들은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라

이미 내부자였던 것이다.

이젠 우리가 침입자이고 

그들은 울타리 안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 앞에서 느끼는 이 박탈감과 허탈감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동네 경찰이나 법원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와 맞닥뜨린 셈이었다.


어쨌든 우월한 인간의 힘을 사용해서

토끼들을 몰아내기로 했다.


그런데 텃밭의 담장 밑에 개구멍이 아닌 토끼 구멍이 난 것을

농장주께서 발견했다.

이젠 철망 밑으로 콘크리트 담을 쌓아야 할 판었다.


"농작물 재배는 동물의 손 타면 그것으로 끝이다." 라는

우리 농장주의 선생님 되시는 분의 말씀을 

머릿 속에서 꺼내며 

농장주는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할 의사를 비췄다.


밭을 일구어 우리가 못 먹지만

이웃 사람도 아닌 토끼들에게 강탈 당한 처지이긴 해도

이렇게 동물들과도 나누어 먹을 마음을 갖게 되니

우리의 마음 씀은 활을 잃은 초왕의 그것보다는

훨씬 자애롭고 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이미 집까지 짓고 텃밭에 거주하고 있는 토끼들과의 협상을 통해

다른 것들은 다 양보할 테니

아직 그들이 손 대지 않은 호박과 고추는

우리에게 따 먹을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토끼들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하고 기대할 따름이다.


오늘 따라 몇 해 전 상추와 케일등의 야채로 싸 먹던 

오겹 쌈밥 맛이 입가에 어른거린다.



여름이 깊어지면

일본 단풍나무도 조금씩 물이 든다.

여름 안에는 이미 가을이 담겨져 있다.



잔디 밭에는 토끼풀이 여기 저기.

토끼가 좋아 해서 토끼풀이라고 했을까?

아니면 토끼풀이 토끼처럼 번식력이 좋아서 일까?

토끼들은 사방에 널린 토끼풀은 마다하고

왜 우리 텃밭의 채소를 그렇게 먹어치우는 것인지.



철망 밖으로 모기장 같은 나일론 망을 또 씌웠다.




미나리꽝의 미나리.

엄청나게 퍼진다.

토끼들이 미나리는 싫어 하는지

손을 안 댄다.

미나리가 퍼지니

거기서 피어나야 할 양귀비와 

다른 풀꽃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텃밭 안의 장미.

자기를 보호해야 할 가시는 품고 살아야 할 듯.



허브꽃




싹둑싹둑 잘린 케일.

우리 아이들이 케일 스무디를 만들어 먹는 재료인데---

이리 무침하게.




아직 호박은 멀쩡하다.




산딸기도 몇 개 열리고---





파꽃








뜰을 둘러 보는데 새 한 마리

인기척을 듣고 날아 간다.



장미의 계절.



발 뻗고

천장의 선풍기 틀어 놓으니

여기가 천당.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iermont 걷기  (0) 2017.07.01
해트트릭의 변  (0) 2017.06.27
올 해 아버지 날 선물  (0) 2017.06.20
밤나들이- 뉴욕 필 센트럴 파크 연주  (0) 2017.06.16
거울 속 자화상  (0) 201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