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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밤나들이- 뉴욕 필 센트럴 파크 연주

큰 아들은 요즘 로펌에서 인턴 근무 중이다.

말이 인턴이지 사실은 내년 로스쿨 졸업 후 

바로 맡은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고강도의 업무를 배우고 익히느라 바쁘다.


일과 중에는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집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저녁 식사며 캌테일 파티 같은 행사도 소화해야 하니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도 일정에 들어 있다.

오늘 저녁은 연극 관람이다.

어제는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니의 연주가 일정에 들어 있었다.


아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마님은 

워낙 어디 다니며 하는 구경을 좋아하니 

무척이나 들떠 있었지만

난 영 내키질 않았다.

혓바늘이 돋아서 그것 때문에 온 신경이 거기 가 있는데다가

워낙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질색이라 더 그랬다.


그러나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김기사가 이럴 땐 수행비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숙명인 것을.

50mm  단촛점 렌즈 하나 달랑 챙겨 집을 나섰다.

가볍고 밝은 렌즈라 선택했는데

너무 제약이 많았다.


여섯 시 가까이 되어서

마님과 나, 그리고 처제와 조카 세연이,

이렇게 넷이 길을 떠났다.


J Train Halsey 역이 우리의 출발지였다.




우리 옆 가게 델리.

그 앞에서 하루 종일 좌판을 벌리고 있는 무하메드.

물건 다 팔면 얼마나 될까?

나를 보면

"No Money. No Honey,"라며

농을 건넨다.

무하메드는 지금 아프리카 자기 고향에 가 있다.

부인이 둘이다.

그러고 보니 나보다 돈이 더 많다.

Honey가 둘이나 되니 말이다.




건너 편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 지루하니

카메라로 장난을 하게 된다.

그러면 지루할 틈이 없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스마트 폰에 눈길을 주고 있다.

나는 '서핑'의 의미를 요즈음에야  깨달았다.



우리 세탁소가 있는 Broadway의 풍경



그림자와 함께 퇴근하는 사람들.



윌리암스버그 브리지를 건너면

전철은 지하로 들어 간다.





지하철 역 모습





전철 안 모습.

여기도 진상.

중국인인데 수영복 같은 반바지 하나 걸치고 ----


연주회에 가서 먹을(?) 음식을 사러

맨하탄 32 가에 잠시 내렸다.




웅덩이에 비친 건물.

아침에 비가 내려 물이 고인 것이다.





BBQ 치킨.

엄청 바쁘다.

한국계 손님은 1/3 쯤 될까?

새로 생긴 것 같은데 완전 대박이다.





배달 하는 사람.

간판에 가려진 모습이 마치 샌드위치 맨 같다.


음식을 사서 다시 전철역으로---




어둠 속에서 파란 불빛이 보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파란 불빛.



내가 사진을 찍으니 역 한 귀퉁에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관심을 보인다.



81 가 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센트럴 파크로 발걸음을 옮긴다.

손에는 잔디 위에 깔고 앉을 것과

먹을 것이 들려 있다.



옆으로 죽 늘어선 간이 화장실.



무대 앞자리는 이미 다 차 버려서

할 수 없이 뒷 쪽으로----

그래도 비비고 앉을 자리가 있었다.



센트럴 파크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The Great Lawn'

55 에이커나 되는 넓은 잔디가 사람들로 그득 채워졌다.



맨하탄 32 가에서 사 간 

치킨과 김밥으로 식사 시작.




삶들은 연주보다는 연주회를 빙자한

모임에 더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New York Philharmonic 풍선도 보인다.

풍선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찾기 쉽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두 아가씨가 슬그머니 우리 뒷자리에 끼어 들었다.

연주가 시작되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떠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귀의 역할은 무시해 버리고

먹고 마시며 떠드는 입의 역할이 크기만 한

참 이상한 연주회.



지휘자는 Alan Gilbert

뉴욕 필의 상임 지휘자와 음악 감독으로서

첫 미국 출신인 Alan Gilbert의 마지막 시즌이다.

첫 시즌에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에 간 적이 있다.

벌써 8 년이 흘렀다.



첫 곡이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 (From the New World)

관객들도 함께 합창을 하는 파트가 있는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은 바람잡이들로

관객들을 리드했다.

'Goin' Home'


그러나 내 주위의 사람들 중 따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나만 허밍으로---


따지고 보면 원주민(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빼고는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조금만 오르면

다 고향을 등지고 온 사람들이다.

'Goin' Home'은 정말 절절하게 그립고 슬픈 노래이다.


그런데 축제다.



연주회라기 보다는

연주회를 빙자한 한 여름밤, 

'풀밭 위의 식사'라고 보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러는 사이 하늘은 붉게

어두워지고---



우리 앞 집.



신세계 교향곡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다음 연주곡들도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거쉬인의 "American in Paris'와 같은 매격있는 곡이 남긴 했어도

나중에 집에 돌아갈 일도 일이거니와

도저히 음악을 들을 여건이 되지 않아서 였다.



무대와 가까운 쪽으로 거슬러 가니

분위기가 우리 있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음악에 더 진지하게 무게를 둔 사람들이 그 쪽에 많았다.

연주 소리도 더 잘 들렸다.







처제와 조카.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

인도인 노 부부












센트럴 파크 옆 길.



돌아 오는 길.



전철역을 나서며 보이는 풍경.

미니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



언제부터인지 뉴욕 시내

전철 역엔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된다.

(돈에 혈안이 된 뉴욕 시가 왜?)




축구장 옆에 있는 축구 카페





고단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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