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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올 해 아버지 날 선물



미국에서 어머니 날은 5월 둘 째 일요일,

아버지 날은 6월 세 번째 일요일이다.

요란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 날은 거리에 활기가 돈다.

이방인이 와서 보아도

어머니 날은 티가 난다.

꽃과 풍선, 그리고 선물 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거리에 넘치기 때문이다.


아버지 날?

말을 하지 않으면 밖으로 드러나는 징후만 가지고는

아버지 날임을 알아 챌 묘수는 수는 없는 것같다.


우리 세탁소에서 몇 가게 건너 

청과물 가게를 하는 막내 처제도

어머니 날에 팔 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주일 전부터 

꽃을 만드느라 부산을 떨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 날은 평소와 다를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리집의 아버지 날은 다르다.

제법 성대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을 에는

아빠를 위해 Wind Quinntet (목관 오중주)가 되어 연주를 해 주었다.


아이들이 모두 웬만큼 악기를 다루니

어디에 내 놓아도 흠 잡히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연주를 한다.

목관 오중주는 세상의 그 어느 아빠와 비교해도

특별하고 엄청난 아버지 날 선물을 받는 것이어서

나름 행복하고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올해는 다섯 중 둘이 빠졌다.


당연히 목관 오중주 연주를 선물을 받을 수 없었지만

아주 의미 있는 것을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은 다섯이 쓴 카드와 함께

LP 판을 내게 선물했다.


Simon & Garfunkel의 대표곡이 수록되어 있는 판과,

Eva Cassidy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 두 장의 LP판이 그것이다.


아이들이 내가 Eva Cassidy를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전에 쓴 글 중에

Eva의 노래 제목을 끌어다 제목으로 삼은 것이 있는데(You take my breath away)

설마 그 글 뜻을 이해하고

판을 골랐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Simon & Garfunkel 앨범은 둘째가 자기 동네에서

어떤 사람이 집 앞에 놓고 파는 것을 뒤져서

찾아낸 것이다.

Eva Cassidy의 앨범은 새로 LP로 만든 것이다.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빠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어찌 알고

골랐는지 참으로 내 마음에 꼭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결국 선물은 마음이 담겨야 하는 것인데

아버지 날 선물에 자기들 마음을 얹은 것이어서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버지 날이 되었다.


어린 시절엔 엄마가 닥달을 하고

아이디어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어른이 된 지금은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마음 씀으로 선물을 준비한 것이어서

아빠로서는 참으로 뿌듯하고 대견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얹어 선물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슬그머니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이 나보다 낫기 때문이다.

William Wordsworth의 시 "Rainbow'  중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번역하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것 같아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부를 때

'우리 아드님', '우리 따님'이라고 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 부르는 것이

물론 겸손하치지 못하고

어법에도 맞지 않아서

남들의 조롱거리가 될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만의 환상일지라도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소망을 담아 그리 부른다.


아이들은 이 외에 허드슨 강가에서 

브런치와 콘서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티킷과 함께

내가 아버지 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나몬 케익도 구웠다.


아이들이 선물한 LP 판으로 음악을 듣는데

시나몬 케익의 향기도 솔솔 흘러 나오는 것 같다.


다음은 전에 썼던 글( Eva Cassidy의 노래 제목 You take my breath away를 제목으로 했음)


You take my breath away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도 그치지 않고 내린다.

주중에 부르클린에 살면서부터는

출퇴근하는 수고로부터 해방이 되어서인지

일기예보에도 통 관심이 가질 않더니,

이리도 추적추적 그칠 기미가 없이내리는 비에조차 무관심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인터넷으로 날씨를 알아보았다.

열대성 폭풍(Andrea)이 이미 플로리다를 강타하고

동부 해안을 끼고 북상 중이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더 세차게 몰아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다른 업종도 그렇겠지만 세탁소는 비가 오면

영 할 일이 없어진다.

음악이나 들을 요량으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음악 방송에 접속했다.

비 오는 날은 보통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으로 시작하는데

오늘은 얼마 전에 사귀게 된(사귀게 되었다는 건 물론 일방 통행이다)

 Eva Cassidy에 끌렸다.

 

-깊은 속까지 푹 젖은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리워진 것이다.

마침 첫 노래가

'You take my breath away'였다.

 

-내 숨을 앗아간 사람.

-내 숨이 멎었던 순간.

 

내 기억은 내리는 비를 거슬러 1079년 4월인가 5월의

어느날로 돌아갔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였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일과를 끝내고 학교 근처의 다방에서 

그녀를 만날 약속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어두운 다방에 들어섰고,

그녀를 본 순간,

 

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니 숨이 멎었었다.

내 머릿 속은 아무 생각 없는 백지 같은 상태가 되었다.

'황홀'이라는 단어가 꼭 그런 때 쓰기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았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 피어난 장미 같았다.

누가 장미를 요염하다고 했던가.

그녀는 그런 장미가 아니라

아주 청초한 장미였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고 싶다는 열망이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난 그 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지는 못했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도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replay 되었다.

 

그런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광주의 보병학교로

가야할 운명의 트랙 위에 있었다.

 

보병학교로 떠나며 그녀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다.

아름답고 순수한한 것을

그냥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싶다고-------

 

 그래야 아주 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로맨티스트였다.

아주 설익은--------

 

그녀와의 첫 입맞춤은

그로부터 한 일년 쯤 흐른 뒤에야 성사(?)가 되었다.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두 가지가  큰 고통이었다.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들을 수 없다는 것과,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두 고통이었는데,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고통은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워지는 고통은

바람을 넣어도 터지지 않고 계속해서 부풀기만 하는 풍선같이

그 크기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그리움이 바로 고통이었던 시간들.

 

지옥이라는 곳은 바로 희망이 없는 곳이라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그리움은 커져만 가는데 볼 수가 없다면 그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애초에 그리움이 없었다면 희망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리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내겐 희망이 있었고

희망은 날 견디게 해주었다.

6주인가가 지나면 외박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보고 싶다'하는 단어를 쓸 때에는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첫 외박을 나왔던 4월 어느 날,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다가 다시 몸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다.

입술끼리 닿았는지 아니었는지는

아직도 혼미할 뿐이다.

그것도 입맞춤이라고 할 수 있을 있을까?

 

그러나 내 숨을 앗아간 대가를 그녀도 치러야 했다.

난 그녀의 입술을 가져왔다.

상처가 나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마조마하게.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

그녀에게 입을 맞추어야 겠다.

 

아니 그녀의 입술을 빼앗을 것이다.

그냥 설렁설렁이 아니라

야무지게 빼앗을 것이다.

그 옛날 내 숨을 빼앗은 그녀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그녀의 입술을 빼앗을 것이다.

 

30 몇년 전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의 입술을.

 

도대체 왜그러느냐고

혹시 그녀가 물을 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비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 사귄 Eva의 노래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어찌되었든 내 심장은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난 저녁이면 그녀를 볼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까 말이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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