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들을 보러 떠난 길은
초반부터 난행이었다.
일을 마친 뒤 출발한 것은 목요일 오후 7시 30 분.
평소 같으면 성 목요일 미사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났을 시간이었다.
부르클린 아파트에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은
홀랜드 터널을 지나기 위해 장애물을 지나야 했다.
수 십 개의 도로가 수렴을 하고 또 해서
두 개의 차선으로 모아져 홀랜드 터널로 이어지게 되는데
한 블락을 이동하기 위헤
신호가 바뀌기를 두 세 차례 기다리는 건 예사였다.
한 시간 넘게 고스톱(?)을 한 결과
드디어 터널을 건널 수 있었고
내 목뼈는 이미 마비가 되어 있었다.
전후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겨우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목뼈는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굳을까 걱정이 되어 그 이후론
운전을 하며 수시로 목운동을 했다.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막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시작되는 시간에
우리는 드디어 뉴저지 턴 파이크를 달릴 수 있었다.
사바나까지의 열 세 시간의 여정.
유진 오닐의 희곡 제목 같은 '밤으로의 긴 여로(A Long Day's Journey into night)가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우리는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어둠을 가르며 꿋꿋이 달렸다.
아내는 출발 전에 차의 뒷 좌석 의자를 눕히고
그 위에 손가락 두 마디 두께의 매트리스를 깔아
간이 침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는 거기에 교대로 누워서 어둠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얼마 동안 쉬게 할 수가 있었다.
아내와 교대로 운전을 하며
도착한 곳이 버지니아 주에 있는
어느 휴게소였다.
날짜는 이미 하루를 넘겨서 새벽 한 시 반 가량 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뉴욕에서 출발해 뉴 저지주와, 댈러웨어 주,
매릴랜드 주를 지나고 워싱톤 시를 거쳐서
버지니아 주까지 어둠을 뚫고 달린 것이다.
휴게소엔 이미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부활절을 맞아 이동하는 차량이 많은 것 같았다.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겨우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옛날 식으로 말 하자면 말을 매었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차 안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고 있었다.
우리는 차 뒤의 간이 침실에 나란히 누워 두어 시간 눈을 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새벽 네 시가 채 되지 않아서였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또 떠났다.
사람들은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함께
두려움을 갖는다.
내가 그렇다.
처음엔 열 세 시간의 먼 거리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 하니 못 할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잠을 깨워주는 동행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나이키 광고처럼
'Just Do It'
나는 대학 시절에 읽었던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잊지 못한다.
책을 읽었을 때보다도
40 년이 지난 요즈음 그 책이 주는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모모가 시 청소원인 베포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혼자 어떻게 이 넓은 도시를 청소하세요?"
"응, 전체를 생각하면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바로 내 앞만 본단다."
"내 바로 앞을 쓸고, 한 걸음 나가 또 쓸고--- 그러다 보면 다 하게 되지."
젊은 시절에 읽었을 때 몰랐던 의미가
나이 들어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를 가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North Carolina?"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 옆에 늘어선 소나무들----
우리는 드디어 밤으로의 긴 여로 끝에
North Carolina에 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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