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엔 롱아이랜드의 끝에 있는 Montauk(몬탁)을 다녀 왔다.
3월 중순에 접어들기는 했어도
봄은 아직 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가 마치 봄이 오는 걸 시샘하는 것 같았다.
꽃샘추위라는 애교스런 이름으로
불리우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Mauntak은 말하자면 뉴욕주의 최 남 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라
듣기에 제법 생소한 그곳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마음 속으로 동경하는 장소였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등대가 있는 곳은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고향 처럼 친근하고 설레는 느낌으로
내게 손짓을 한다.
-등대-
몬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롱 아일랜드의 맨 끝에 있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대구 낚시를 하러 가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로비스트'의
몇 장면의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 등등이다.
그럼에도 몬탁은 운명처럼
내가 가서 한 번은 보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다.
두어 시간 운전을 해서
도착한 바닷가에서 우리는 갈매기들과 잠시 시간을 가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 문을 열고 나갔는데 바람이 문을 대신 닫아 주었다.
그것도 살짝이 아니라 '쿵'하는 소리를 내면서---
손이 시려운 것도 문제였지만
바람 때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바위 위엔 하얀 말갈기처럼
얼음이 얼어 있었는데
파도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 바닷가의 봄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았다.
몬탁에 있는 등대로 향했다.
국가 사적지로 등록된 몬탁의 등대는
1792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796년에 완성되었다.
뉴욕 주에선 첫 번 째.
그리고 미국 전체로 치면
지금까지 불을 밝히는 등대 중 네 번 째로 오래된 등대이다.
200 년이 넘는 시간을
밤바다를 지키며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데 해안 침식 때문에 등대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기 때문에
커다란 돌들로 등대 주변에 축대를 쌓았다.
그래서 등대는 또 다시 몇 백년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그 자리에 더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등대가 밤에 빛을 비칠 수 있도록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돌들이 떠 받고 있다는 사실.
정진규 시인의 시 '별'을 잠시 인용한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우리는 등대가 빛을 내도록
어둠처럼 배경이 된 수 많은 돌 위를 천천히 걸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어둥미 된 적이 있는 지를
생각하면서----
파도가 쉬지 않고 밀려 왔다.
수평선 저너머의 봄도
파도에 실려서 조금씩 다가 오고 있을 것이다.
춘래 불사춘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고사에 나오는 시 구절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이지만,
'봄은 봄 이 오는 것 같지 않게 온다'고
나름의 해석을 해 본다.
파도는 쉬임 없이
봄을 등에 없고 달려오고 있었다.
바위 위엔 얼음이---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봄은 가장 늦게 오는 것 같다.
갈매기와 잠시 놀았는데
너무 추워서 그만 두었다.
등대엔 출입 금지.
바닷가의 바위 위엔 해초,
그리고 그 위엔 얼음.
바닷가 쪽엔
이렇게 크고 평평한 돌이 있어서
걸어다닐 수가 있다.
누군가가 자물쇠를 ----
영원할 것 같지만 녹이 슬고 있다.
철조망.
멀리 해안의 절벽이
침식되어 패이고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등대는 여러 가지 크기의
돌들이 스크럼을 짜고 보호한다.
바닷가엔 수도 없이 많은
자갈과 돌들이
각기 다른 모습과 색깔을 하고 모래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나 예쁘고 탐이 나서
몇 개를 주웠다.
그런데 더 예쁜 다른 돌들이 또 눈에 들어 왔다.
그래서 손에 들었던 돌들 마저 도로 내려 놓앗다.
돌을 하나도 가지고 않은 것은
내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욕심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 돌들을 다 들고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나무 한 그루.
미국적인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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