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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이야기

이별여행

이별여행

 막내 민기가 2011년 7월  11일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아이들 다섯이 모두 집을 떠난 셈입니다.
 
 그래서 한 주 전, 월요일에
 우리 식구 모두가 민기를 보내기 위한
 이별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이래야 집에서 겨우
 이삼십 여분밖에 걸리지 않는
 Swven Lake 중 하나입니다.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셋 째 딸 선영이가 빠졌습니다.
 해야 할 렛슨이 넷이나 되어서
 도저히 스케줄을 바꿀 수가 없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 넷만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섭섭할 수 가 없었습니다.
 마치 이가 하나 빠진 것 같이 허전했습니다.
 
 우리의 행선지는 Seven Lake중의 하나입니다.
 아이들도 모두 한 두번씩은 가보았던 곳입니다.
 마침 독립 기념일이어서
 Seven Lake 주변은 차와 사람으로
 무척이나 붐볐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가벼운  Hiking Course여서인지
 그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밑에서 개울을 끼고 오르다 보면
 마침내 산 정상에 있는 호수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이킹 코스 초입에 누군가가 장갑 한 짝을
 나무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나는 부러 그 앞에 멈추어 섭니다.
 장갑을 거기에 자리하게 한 사람의 마음과 만났습니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사랍들에게
 작은 미소로 인사하려는
 따뜻한 마음과의 만남.
 세상은 이런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만남으로 해서
 얼마나 더 아름다운 지 모릅니다.
 마음을 열기만 하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가족의손, 엄마의 손도 이러하지 싶습니다.
 
 고단한 삷의 여정에 위로와 기쁨이 되는
 바로 그 손입니다.
 


 아무래도 엄마에겐 큰 딸입니다.
 산을 오르며 아내와
 작년에 결혼한 큰 딸은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라
 숨이 가쁜 줄도 모릅니다.


 
 이틀 전엔가 온 비로 가는 길 곳곳에
 물이 괴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아이들 모습이 찍혔습니다.
 내 마음 어딘가에
 그리고 아이들 마음 어느 한 곳에
 오늘,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찍혀 있을 겁니다.







 위태롭게 흔들거리는다리 위에 섰습니다.
 자신의 몸을 뉘어서 사람들을 건너게 해 주는 다리.
 부모도 그런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밟고 안전하게
 다른 세상으로 건널 수 있도록
 기쁘게 몸을 눕히는 존재.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육신은
 다리입니다.
 하늘나라로부터 이 지상으로
 한 생명을 건너오게 하는-------
 
 나도 아들들처럼 소매를 위로 걷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아이들과 하나 되는 행위입니다.

 
 




 물도 마실 겸
 좁 쉬기도 할 겸, 
 너럭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바위 틈으로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집니다.
 
 전에도 늘 이 곳에 앉아서
 물을 마시며
 쉬어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가다가ㅣ
 문득 목이 마르고 고단할 때면
 쉬어갈 수 있는 물가의 너럭바위 같은 존재.
 
 부모가 된다 함은 바로 그런
 너럭바위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
 



 군데 군데 예쁜 색깔의 버섯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예쁜 색깔의 유혹.
 
 괜히 아는 체 하면서
 "세상의 유혹이 저렇단다." 하고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을 견디고
 피해가는 것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지켜보고
 기도할 뿐입니다.
 
 
 


 힘들여 오른 산 정상에는
 시원한 바람과 호수의 경치가 
 땀을 식혀 주었습니다.
 
 보이지도,
 만지지도 못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바로 사랑이 아닐런지요.
 
  어둔 길을 혼자 갈 때에도
  우리 모두가 함계 가고 있다는
  믿음 같은 걸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함께 한 하이킹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큰 아들 준기.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마음에 쏘옥 드는 아들'입니다.


 둘째 딸 지영.
 어제 저녁에도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막내를 보낸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 게지요.
 지성에다가  감성까지도
 갖추었습니다.


 음료수를 나누어 마시고 있는 두 아들.
 앞으로 엄마 아빠와 같이 살 날보다도
 저희들끼리 살아갈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엄마 아빠보다도
 자기들끼리 더 친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만큼 자랐나?
 
 엄마 머리가
 막내 민기의 어깨를 겨우 넘었나 할 정도로
 키가 자랐습니다.
 쑤욱하고
 키 크는 소리라도 들릴 것 처럼 자랐습니다.
 
 그렇게 자란 민기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마음도 정신도 그렇게 쑤욱 자라서
 돌아왔으면 하고 바랍니다. 

 '먼 길 떠날 때,
 가장 멀리까지 배웅나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했던가요?
 
 언젠가 읽었던 글 한 귀절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호수 가장자리엔 연꽃이 막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호수엔 온통 노란 색의 연꽃 뿐입니다.
 
 험한 세상에 나가서도
 순결한 삶을 살라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무심히 연꽃을 지나쳤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연꽃의 손짓마저도
 보이질 않는 것 같습니다.
 
 진흙처럼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가진
 이 어른의 눈에만 연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혼자 갈 때에도
 우리는 이렇게 늘 함께 가고 있음을------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한 식구입니다.




 올랐으니 내려가야 합니다.
 오르며 건넜던 다리도
 다시 만났습니다.
 
 내려갈 때의 다리 모습은
 영 딴 판입니다.
 오를 땐 조심조심 건넜지만
 내려갈 땐 씩씩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흔들리긴 해도
 무너져 내리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깨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믿음의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앞서서 갑니다.
 아직은 아이들 따라잡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언제고 아이들이 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기만 해야 할 때도 오겠지요.


  옛날 두 아들과 함께 왔던 곳입니다.
  그때도 여기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무가 자라면서 옆으로 자라다가
 다시 직각으로 꺾어서
 지금은 위로만 자라고 있습니다.
 말 같기도 하고
 목이 삐죽이 긴
 기린 같기도 합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제고 우리 식구가 다시 이 곳을 찾을 때
 또 사진을 찍을 것입니다.

 빛 바랜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며
 우리는 그 자리에 대해,
 그리고 함께 했던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낙엽이 내려 쌓이고,
 눈이 덮였다 녹고,
 새싹이 돋고-------


 몇 차례 그런 싸이클을 반복하며
 시간은 흐르겠지요.

 언제고 우리가 이 자리를 다시 찾을 때
 우리의 기억의 먼지를 털어낸 자리에
 함께 했던 시간이 사리처럼 빛날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시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