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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이야기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큰 딸 이야기

 

큰 딸 소영이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재주가 많아서

학교공부는 물론이려니와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등

가르치는 악기마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어요.

그러니 부모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요.

그 아이가 세 살때 학교에 찾아가서 입학 여부를 알아보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학교의 치어리더팀과 재즈댄스팀에 지원을 한 겁니다.

공부 잘 하고, 음악이나 하면서 얌전하게 자라줄 거라 믿었던 저희 부부에겐

정말 가슴 무너지는 소식이었어요. 댄스라니....

무용 레슨 한 번 받은 적이 없으니 

그 팀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떨어지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웬걸요,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주니어 대표팀도 아닌

학교 대표팀에 덜컥 선발이 되고만 겁니다.

저희는 그 때부터 딸아이에게 노골적으로 냉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반으로 진급하면서 공부에 더 신경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치어리더와 댄스 팀의 양 쪽 주장을 하며 바쁘게 지내니...

딸아이의 얼굴은 보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힘과 시간을 치어리딩과 댄스,

그리고 팀을 이끌고 조화시키는 일에 쏟는 것 같았습니다.

제 일은 제쳐놓고 실속없이 팀 동료들과 후배들을

격려하고 다독거려주는 일에만 신경쓰는 것이 참 못마땅했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열린 시상식에 마지못해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딸아이가 큰 상을 받았습니다.

양 팀 코치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례적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딸아이를 칭찬하였고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 딸아이의 모습을 오랫만에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4년 내내,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칭찬하지는 못할 망정

우리의 기대에 어긋난 것에 대한 실망과 속상함 때문에 멀어지기만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딸아이는 자폐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상이 아닌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그러니까 더 보람이 있고 의욕도 생긴다고 하는군요.

매일 아침 아이들과 만나는 기쁨으로 하루를 여는 딸아이를 보면서

편견과 욕심 때문에

제대로 그 모습을 인정해주지 못하고 사랑해주지 못한 제 자신이 참 부끄럽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남다른 열정을 지닌 큰 딸아이가

좋은 선생님이 되리라는 걸 이젠 의심하지 않아요.....

우리는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곤 하지요.

초등학교 동창을 대학교에 간 후에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의 가슴에 달려 있는 나보다 훨씬 좋은 일류대학의 뱃지를 보곤

아니 이 친구가 어떻게? 하면서 애써 무시한 적도 있습니다.

그동안 밤잠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한 성실함을 칭찬하기보다는

옛날 나보다 한참 뒤쳐져 있던 모습만을 보려 하죠.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길러라

그리고 찾아내는대로 그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칼릴 지브란

 

오늘 저녁,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속에 있는

좋은 점, 혹은 사랑스러운 점을 하나씩 찾아서 서로 나누어 보세요.

아무리 칼바람이 불고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이렇게 따뜻함을 나누고 나면 마음 속부터 훈훈해지는 행복한 저녁이 될 거예요.

저도 딸아이에게 남을 돕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얘기해주려구요.

미루지 않고 오늘 저녁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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