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마님으로부터
아카디아 국륍공원에 간다는 통첩을 받은 후부터
토요일까지 세탁을 부탁하는 옷들이 밀려 들었다.
하늘이 우리를 시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우리가 어딜 가는 걸 싫어하는 것인지.
마음 편히 떠날 수가 없는 상황이 세탁소에 머무는 동안 이어졌다.
토요일 오후 4시,
드디어 세탁소 일은 상황 종료.
나머지 일들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도망치듯 세탁소를 빠져 나왔다.
이럴 때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안 된다.
구약 성경의 교훈도 있지 않은가,
소돔에 미련을 두고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그건 비단 롯의 아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캐나다 크루즈 여행을 떠날 때도 그랬다.
손님과 시비를 가리느라 배를 타지 못 할 뻔 했던 기억도 있다.
작은 것에 목숨을 걸다가 큰 것을 잃는 경우를
살다 보면 자주 경험을 하게 된다.
늘 새겨야 할 말
"뭣이 중헌디?"
'떠날 때는 말 없이,
그리고 뒤 돌아 보기 없기'가
좌우명처럼 내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등 뒤에 남겨진 것들이
끈질기게 내 시선을 돌려 놓으려 했지만
이젠 휘적휘적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갈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되었다.
이 지상에서 마지막 길을 떠날 때도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어디론가 떠날 때면 하곤 한다.
하루 종일 잊을만 하면 울리던 마님의 독촉 전화 소리가
종말을 고한 것도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무엇이 시작될 때
무언가 다른 하나는 끝이 난다는 사실이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떠나는 일만 남았다.
세탁소에서 그날 밤 묵을 곳까지의 거리는 486 마일,
거의 800 킬로 미터가 되는 긴 거리였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 지는데
우리 앞에는 485마일이나 되는
'밤으로의 긴 여로'가 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더 줄일 수도 없는
여덟 시간이 넘는 밤 길은
견딜 수 없는 피로와 졸음을 동반해야 한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했던 말이
절절하게 가슴 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대학 1학년 때인가 읽었던
미카엘 엔데의 '모모'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모모가 도시를 청소하는 청소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크고 넓은 도시를 혼자서 청소를 할 수 있어요."
청소부는 대답한다.
"도시 전체를 먼저 생각하면 난 시작도 하지 못 할 거야.
난 다만 내 한 발 앞만 보고 청소를 해.
그렇게 한 발 한 발 옮기며 쓸다 보면 도시 전체를 청소하게 된단다."
그렇게 한 치 앞만을 보며
우리는 길을 떠났다.
다음은 10여년 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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