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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

가을 산책

10월도 반이나 지났습니다.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542


계절은 언제 오는지 모르게 슬금슬금 다가와,

그걸 알아차릴 때면 어느새 큰 걸을으로 저만치 가 있습니다.

올 가을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침에 텃밭에 나가 보니

그 풍성하던 망초꽃 나무들도 푹 주저 앉았습니다.

고추며 호박 같은 채소의 잎은 시들고 , 마르고----


깨꽃이 진 자리엔 까만 씨가 영글어 갑니다.

한 생명이 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의 씨가 여뭅니다.


열매.


열매는 한 생명이 소멸한 댓가로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가을은 그래서 아프지만,

풍요롭습니다.




일교차가 큰 탓에 풀잎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풀도 마르고 물이 들어 갑니다.

나뭇잎은 떨어지기 전

아름다운 색으로 변하는데

우리 사람의 육신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가을을 맞은 내 육신과 나뭇잎 둘 중 누가 더 슬픈 존재일까---


결론을 내리지 못 했습니다.



케일 잎

벌레 먹었습니다.

가느다란 입맥에 작은 이슬 하나 열렸습니다.


상처.


그 아픈 상처도 소멸되는 시기입니다.

가을은 은헤로운 시기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멸에 대한 기대.



몇 남지 않은 장미의 색이 고혹스럽습니다.

가을 물이 든 것 같습니다.



한국에 다녀온 마님은 시차 때문인지

낮잠에 들었습니다.

혼자 외출하려 나섰습니다.

현관 문 옆에 난 쪽 창으로

건너 집에 찾아 온 가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가을.


행선지는 Piermont입니다.

강물 소리와 갈대 소리가 서걱이는 곳.


내 고향으로 삼은 지 오래입니다.




해바라기의 씨도 영글어 갑니다.





씨방이 열리고

목화 솜처럼 흰 머리카락이 봉선화 씨처럼 터졌습니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 다닐 때

모래 주머니를 던져서 터뜨리면

여러 색의 리본 같은 것이 폭죽처럼 터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의 가을 하늘을 닮은

함성소리도 들려 옵니다.


바람이 붑니다.


젊은 시절, 어깨까지 내려오던 

내 머리카락이 떠 오릅니다.

고개를 까딱하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있던 자리로 돌려 보냅니다.


메를로 뽕띠의 환각의 다리


내 머리가 긴 줄로 잠시 착각했습니다.




백일홍은 여전히 색이 곱습니다.




담장 밑에 키 작은 해바라기 몇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발육 부진에 벌써 잎은 시들고---


담장 때문에 

키 작은 해바라기는 해가 담장을 넘어가면

고개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해 바라기'를 할 수 없는 '해바라기'의 슬픔 같은 것.



가을 해바라기.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갈대숲 사이로 걸어갑니다.

길은 내 발 아래에만 있지 않습니다.

공중에도,

웅덩이 안에도 있습니다.


나의 길.

그걸 찾아 걸어가는 것이 삶입니다.








물 웅덩이에 가을빛이

내려 앉았습니다.



갈대밭 사이의 집

이 집에 살고 싶어서 지을 때부터

몇 번을 기웃거렸습니다.


헤르만 헷세의 싣달타처럼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내 삶은 강물 소리 한 번 제대로 듣지 못 한 채

지금껏 달려 와

이 가을 나를 여기에 세웠습니다.


가벼운 바람 한 자락 귓가를 스쳐 갑니다,

무심하게.




푸르던 강아지 풀에도 물기가 빠지고

누렇게 변했습니다.

그래도 해질 녘에 바라보는 강아지풀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 뻘(모래) 위에 하트를 그려 놓았습니다.

강물은,

그리고 시간은 머지 않아 저 흔적들을 지워버릴 것입니다.


곧 사라질 것을 그리게 하는 

사랑은 무모한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난 더 이상 사랑에 빠지지 못 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습니다.




날이 기울며

벤치를 채웠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뜹니다.


빈 자리

너의 빈 자리,

그리고 나의 빈 자리.




썰물이어서인지 벌이 드러나서인지

물새와 오리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무리 물새라도

결국 그들이 쉴 곳은 뭍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래로 빵 부스러기를 던지자

오리들이 떼로 몰려 왔습니다.


아이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 흥분하지 않는,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건,

소리를 지르며 흥분할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과 같습니다.




배를 띄우던 선착장이 있던 흔적입니다.

나이테.

그 위에 물이끼가 파랗게 끼었습니다.


시간이, 세월이 아프다는 느낌이 몰려 왔습니다.

초록 빛이 슬픈 느낌으로

아주 낯설게 내 속으로 비집고 들어 왔습니다.




강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낚고 있는 것일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패닉 계 사람들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주말이면 이 곳에 몰려 드는 것 같습니다.

마치 물 속에 희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이 살짝 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꿈을 꾸는 그들이.




노란 가을.


릴케의 시 '가을날'이었던가,

'그들에게 이틀만 더 따뜻한 날을 베풀어 주소서.'

라는 구절이 등장하는 것이.


가을 날 햇살 한 줌에 가슴 저릿해집니다.

기우는 가을 햇살 한 줄기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햇살은

그 순도가 99.9%로 곱습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무언가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물을 던져 봅니다.

희망이 그를 배반하지 않았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미련을 뒤에 남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미련이라 쓰고 희망이라 읽습니다.


그 미련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곳을 다시 찾게 됩니다.







길 위에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물의 양의 차이는 있어도 

웅덩이는 늘 거기에 있었습니다.

누구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발에 물을 묻히기 싫으면 살짝 돌아가면 되니까요.

길이란 그런 것이지요.

언제나 똑바로 가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거기 내려 앉은 가을 색이 참 곱습니다.




네 노인들에게 찾아 온 가을.

노랗게 삶이 익어 가고 있습니다.

나뭇잎처럼---


그들의 말 소리에도

노란 나뭇잎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낚시를 마치고 빈 손으로 돌아가던 두 사람.

내가 물었습니다.


"Nada?"

스페인 어로 Nothing이라는 뜻입니다.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냐고 물은 것이지요.


'"Nada."


씁쓸한 웃음과 함께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만약 그들이 내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를 보고

무언가 좋은 걸 찍었냐고 내게 물어 본다면

나도 그들에게 쓴 웃음과 함께

"Nada"라는 대답 밖에 돌려 줄 것이 없습니다.


삶은 계절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나무에 싹이 돋고 가지에 잎으로 가득 찼다가

단풍이 들고,

그리고 

하나씩 떨구고 비워 가는 ------


나는 무얼 비워가며 

이 가을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10월 중순의 해는

노루꼬리만큼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아주 짦아서

쉽게 저물기 시작합니다.


밤이 지상으로 내려 앉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습니다.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나도 발길을 돌립니다.


물론 집으로 가기 위해서---

이지요.


집으로----


내 삶의 밤, 혹은 겨울이 되었을 때도

무심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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