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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한국 여행

헤이리-황인용의 Camerata Hall

헤이리-황인용의 Camerata Hall

 

임진각은 처음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이 길을 헤메는 바람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중간까지,
그리고 임진각에 발을 디딘 것이지요.
길을 잃어 호강을 했습니다.

'헤이리'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낯 선 파주땅을 헤매며 다니느라
시간이 꽤 흘렀기에
겨우 도착한 헤이리엔 햇살의 각도가
뉘엿뉘엿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이미 기운 후였습니다.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마을.
각종 전시와 작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의 길은 눈이 녹으며 얼어붙은
차도가 이 마을에도
깊은 겨울이 점령하고 있음을 알게해 주었습니다.

한겨울, 그리고 주중이라는 시간이
나같은 여행객에게
한가로운 방문을 즐길 수 있는
혜택을 허락했습니다.

조심조심 얼어있는 길을 따라가라
아주 불규칙하게 배열된,
따라서 모양도 제각기인
건물들을 지나 도착한 곳.
Camerata Hall.

Camerata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 혹은 동호인의 모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전성기인 16세기말 피렌체의 예술후원자인
조만니 데 바르디 백작의 살롱에 모였던
시인, 음악가, 화가, 문인, 건축가 등 예술가들의
소그룹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군요.


 겨울에다 평일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그다지 붐비질 않아 나같이 시간치기를 하는
 여행객이 덕을 보았습니다.
 겨울이라 다소 을씨년한 헤이리의 모습

  황인용 씨가 건축주로 되어있는
  Camerata 입구.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내 마음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 공연에 가 있습니다.

 이층 높이까지 이르른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음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극장에서 가져왔다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Western Electric Speaker
 또 1930년대에만들어진 독일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엄숙하지면서도 미묘하게 세세한 떨림까지
 내 귀를 통해 내 가슴을 떨리게 했습니다.
 작곡가와 연주가, 그리고 음향기기, 그리고 내가
 하나가 되는 오르가즘을 체험했습니다.

 진공관 앰프.
 그리고 스미커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빛과 결에서 세월의 도도함, 유구함 같은 것이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살짝 들어가 보니 진공관 앰프와 턴테이블
 CD와 LP판들이 오여있었습니다.
 황인용씨가 방송활동을 하면서 모은 LP판이
 일만 장 이상이 여기 있다고 합니다.(?)
 일단 이렇게 공개가 되었으니
 모든 사람의 소유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건물의 한 쪽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빛이 너무 강하면 반투명의
 차양을 드리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 하늘로 난 창 아래에서
 사람들은 음악에 빠져 있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차를 마시며 사랑을 익혀가기도 합니다.
 각자의 시간들이
 오래된 진공관 앰프와
 나뭇결이 닳고 바랜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숙성되어 갑니다.

 이층에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음악이 되어 듣는 이들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 것 같습니다.

 화장실 씽크에서 만난 조약돌이
 내 고향 집이 있는 영월의 작은 강으로 나를 데려다주었습니다.
 강, 조약돌, 고향.
 그러다 보니 고향의 강 가에 서 있던
 나무를 스치고 가던
 바람소리까지 만났습니다.

 문화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겠습니다.
 손 씻는 곳에 바람소리까지
 몰고 오니까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머물다 간 흔적.
 이 Camerata Hall은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헤이리의 풍경.
 기우는 햇살.
 머지않아 밤이 찾아오리니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먼
 나그네의 마음을 재촉합니다.

 빈 자리
 빈 거리
 밤은 낮 동안 만들었던 흔적을
 지우는 시간입니다.
 헤이리의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야할 것 같습니다.
 마법이 풀리기 전에
 돵자님의 궁전을 떠나야 하는
 신데렐라의 마음처럼 다급한
 내.마.음.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
 철조망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만났습니다.
 아무리 철조망을 세워놓았어도
 해를 막진 못했습니다.
 시간도, 기억도
 저 철조망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철조망 사이로 강한 빛을
 비추며 해는 그렇게 북녘 땅 저켠으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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