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세 번 째 일요일은 '아버지 날'(Father's Day)이다.
막내가 해병대에 가기 전까지는
아버지 날에
다섯 아이들이 늘 함께 했다.
어머니 날이 있는 5월엔
학기 중이라 멀리 있는 아이들이 오지 못해도
방학을 한 6월의 아버지 날엔
아이들이 다 모여 그야말로 'Full House'가 되곤 했다.
나는 늘 이렇게 말을 했다.
"Your presence is the best present."
아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그리 행복하고 흡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 적엔 아버지 날 선물이
아주 검소했지만 그 선물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섯 아이들의 마음을 모아
들려주는 목관 오중주 연주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올해는 5 아이들 중 딸 셋만이
아버지 날이라고 모였다.
막내는 군인이라 올 수가 없었고,
큰 아들은 온다는 걸 마님이 말렸다.
(어차피)막내도 없으니 'Full House'가 되기엔
정족수가 미달이니
하나 정도 더 빠져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큰 아들은 이번 주말에 있을
셋째 딸의 'Performance'에 와야 하니
아버지 날엔 번거롭고 힘들게 올 것 없다고
마님이 지시를 했는데
절대적으로 나도 동감한다.
그래서 올해는 역대 최소 규모의
아버지 날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일요일엔 모두 바쁘니
아버지 날 'eve'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걸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막내가 군대 가기 전에는
아버지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다섯 아이들이 연주하는 목관 오중주도
행사 목록에서 빠지지 않던 것이
막내가 군대 간 이후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을 풀었다.
손녀 Sadie의 카드,
그리고 다섯 아이들이 쓴 카드와
옷과 모자.
마님이 하사하신 전화기(전화기 이야기는 따로 해야겠다.)가
그 내용물이었다.
그리고 아빠 사진 찍으라고
뉴저지 어느 풍선공원 입장권도 있었다.
옷과 모자는 독립 기념일에
뉴 올리언즈로 짧은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 있으니
그 때 입을 옷과 모자로 준비하라는
마님의 암묵적인 강요(?)가 있었음은 거의 틀림이 없다.
제법 돈이 들어갔을 것 같다.
Law School에 다니는 큰 아들 빼고는
다 제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선물의 액수는 늘어갈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가격이 좀 나가는 선물을 받을 때면
기쁘기 보다는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느낌이 더 크다.
'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아빠일까?'
둘째는 아버지 날 당일에
내 'face book' time line에
글과 사진을 함께 올려 놓았다.
Happy fathers day to the most selfless, warm, and patient dad! I love you!
내게는 영 과분한 찬사와 더불어
자기 결혼식 때 찍은 사진 중 하나를 올려 놓았다.
내가 왕관을 쓰고 있는 사진이었다.
둘째가 이런 사진을 올렸을 때는 거기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
아주 사려가 깊은 아이니까----
그건 자기들에게
아빠가 왕과 같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어도 금빛 왕관을
아빠 머리에 얹어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는데
세상에서 내가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두 아들이 빠지긴 했어도
아빠에게 금빛 왕관을 씌워주는
아이들 때문에
'왕이 된 남자'인 나는
올 해도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빠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빠가 되겠다는
왕으로서의 의무도 다시금 되새긴다.
그래야 아이들이 머리 위에 얹어 준 금관도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고
내 머리 위에서 빛을 내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왕이로소이다 (0) | 2016.06.21 |
---|---|
오늘 저녁 - 여름 첫날 (0) | 2016.06.21 |
채식주의자와 엥겔 지수 (1) | 2016.06.08 |
무지개를 쫓아서 (0) | 2016.06.06 |
나는 Vegetarian (0) | 2016.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