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시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강아지 Sammie가 종일토록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기력을 상실해서
오후 6시 45분에 안락사 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Sammie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지난 주 토요일 집에 들어갔는데
별 일도 없는데 딸 셋이 다 모여 있었다.
우리와는 따로 살고 있는 두 딸이
가금씩 조카를 보러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있지만
특별한 일도 없는데 함께 집에 오는 일은 드문 일이다.
늘 그러하듯 둘째 딸이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평소보다 낮은 낮은 톤이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자기들이 겪었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전달하려는 딸아이의 마음이 읽혀졌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큰 딸에 의하면
Sammie가 그 주일 내내 아무 것도 먹으려 하지 않고
현저히 기력이 떨어져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신장의 기능이 너무 나빠져서
더 이상 살기가 힘이 든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Sammie의 몸은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지경으로 야위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나는 컴퓨터 모니터로
사진을 들여다 보며 애써 태연한 척 하였다.
아내는 한 주일 동안 우리에게로 배달된 메일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아내와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이럴 경우 어찌해야 하는지
암묵적으로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들은 우리가 너무 태연해서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Sammie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따로 Sammie 만을 위해서 먹이를 만들어 주고
잠잘 때도 데리고 잤다.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되는 것 같아서
두 아들이 돌아오는 5월 중순까지는 살 수 있으려니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오늘 아침,
비가 내리고
Sammie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첼로의 선율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늘 그러하듯
내 발치에 Sammie가 머물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존재의 소멸.
시간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는 이불 홋청을 꿰메고 계셨다.
나는 이른 나이에 깨우친 한글 실력을 뽐내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뜻도 모르면서 '동아 국어사전'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 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이가 한 공간에 있었다.
"할머니, 시간이 많이 지나가면 나는 어떻게 되지?"
"나이를 먹지."
"그리고 또 나이를 먹으면?"
"그러면 죽지."
"죽으면?"
"그러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지."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존재의 소멸'
나는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 이미 허무주의자가 되었다.
삶이란 무가 시작이고 무가 끝인 그 무엇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해,
아니면 그 허무에 항거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행동하고
어떤 이들은 사랑을 한다.
우리 식구 페북에 큰 딸이 이렇게 썼다.
"You know how we're always saying what a pain you are, you're the world's worst dog... Don't believe it.
Don't believe it for one minute because you know we couldn't find a better dog.
I love you more than anything. You're a great dog, I love you."
둘째는 이렇게 썼다.
Goodbye Sammie.. You were the most loyal dog that never left my side.
The last few weeks were awful and I'm glad you're no longer in pain.
I wish I could take you on one more walk, or give you another hug, or sleep with you at my feet again.
We always said that if some how you got lost, you'd find your way back to us because you truly loved us.
Rest in peace Sammie, thank you for loving our family.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식구 앞에 나타났던 Sammie가
13년을 우리 곁에 머물다
사라졌다.
내가 관심을 주건 아니건
나와 우리 식구들에게 한결 같은 사랑만을 남기고
Sammie는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무에서 무로의 행진 - 삶
무에서 무 사이를 무어라고 부를까?
허무, 혹은 사랑?
허무한 존재들끼리 더 사랑하는 일 외에
이 허무를 넘어설 수 있는 일이 더 있을까?
비가 아직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첼로의 선율은 계속 이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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