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집에 들어오자
전화가 왔다.
처제가 아내에게 한 전화였다.
무슨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처제와 동서는 Albany에 들렸다가 Lake George에 가 있다는 것이었다.
Albany 주립대학(SUNY)에서 MBA를 마쳤으니
나름 추억이 있는 도시여서 Albany에 들렸다가
내친 김에 Lake George까지 간 것이었다.
호텔 방을 얻었는데 침대가 하나 남으니 와서 자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세 시간 걸리는 곳까지
빈 침대 채워주러 간다는 것은 사실 수지가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늘 긴장을 제공한다.
그러마고 대답하고 저녁 7시에 출발했다.
Lake George는 큰 딸 소영이가 6학년 때인가
여름에 온 식구들이 캠핑을 갔던 곳이다.
그런 가물가물한 추억이 있는 곳이니
다시 한 번 가서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정확하게 세 시간을 운전해서 우리는
Lake George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봄을 맞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봄을 등 뒤로 하고 북 쪽으로 세 시간을 올라갔으니
당연히 그 곳의 밤 공기가 서늘했다.
고단한 몸을 눕히고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전 날 밤도 잠을 설쳐서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눕자 마자 잠 속으로 푸욱 가라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니
구름에 붉은 빛이 돌았다.
사진 몇 장은 찍고 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지리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냥 차를 타고 나섰다.
기분이, 감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사진 찍기 적당할 것 같은 곳이 나타났다.
길에서 호수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니 작은 호텔들이 물 가에 있었다.
그러나 호텔은 비어 있었다.
5월이나 되야 문을 연다는 것이다.
우리가 묵은 곳도 주말에만 연다고 했다.
차에 비친 여명
얼음이 채 녹지 않았다.
호텔마다
보트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모래 한 쪽엔 깨진 얼음이 쌓여 있었다.
붉은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험으로 볼 때 5-10 분 지속되고 사라진다.
차를 돌려 호텔 쪽으로 오는 길에
호수가 시작되는 곳에 들렸다.
Lake George는 길쭉하게 생겼다.
32마일 정도의 길이니 차로 가면 한 시간 가량 걸린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이 동네에 있는 산에 오르자고 해서
동서 부부의 차를 따라 갔다.
앞장 선 동서의 차가 굴 속에서 고전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추운 곳이어서 굴 속은 아직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었고
동서의 차는 조금 올라 가다가 멈추었다.
동서가 고전한 건 안 됬지만
사진 찍기는 좋은 장소일 것 같았다.
마음이 뛰었는데
사진은 별로다.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했다.
하지만 콘트라스트 타령 하기 전에
내공이 약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산에 오르진 못 했어도
작은 추억 거리 만들었다.
동서와 처제의 그림자.
굴 속에서 찍은 사진을
나누어 보고 있는 중.
가까운 곳에 있는 성당(Sacred Heart)에서
주일 미사를 했다.
거의 머리 희끗한 70대 신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청소년 열 몇,
그리고 미사 시간에 천방지축으로 뛰고
우는 어린 아이 서넛.
그러고 보니 나보다 젊은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당 벽에 한 쪽은 성체를 모신 감실,
그리고 다른 한 쪽엔 성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사의 양대 축인
성찬의 전례와 말씀의 전례가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반영된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 곳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바로 옆에 또 하나 오래 된 성당이 있었다.
보고 싶다고 하니 어떤 분이 문을 열어 주어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색 유리창을 통과한 빛이
어둔 성당 안을 아름답게 채색을 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예수.
고통스럽지만
영광의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빛들로 해서.
낯선 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면
마음도 조금 더 경건해지고 차분해 진다.
우리는 미사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Saratoga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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