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노르웨이 여행

노르웨이 여행 - 오슬로에서 트롬소까지 1

노르웨이 여행 - 오슬로에서 트롬소까지(1)


오슬로 공항에 내리기 전

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탈 승객은

승무원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뉴욕에서 출발이 지연되었으니 비행기 시간에 대기가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다른 승객들은 그들을 위해 잠시 기다려야 했다.

사실은 비행기에 탄 우리 모두가 시간을 도둑 맞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질서를 지키며 마음 급한 그 승객들을 위해

길을 터주었다.

승무원 하나가 그들을 인솔해 급히 기내를 빠져나갔다.


그럴 때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금 아직도 여전히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험악한 일들 때문에

마음쌀 찌푸리지 않고 어디 하룬들 편히 지나가는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이럴 때 다시 잘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의 깃을 여미게 된다.


우리는 노르웨이 북 쪽, 북극에 가까이 있는 트롬소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예정이었고

비행기의 연발착에도 불구하고 1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일단 공항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노르웨이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먹어야 할 것을 거르지 않는 게

나의 신조다.

여러가지 샐러드며 빵과 커피를 파는

델리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넉 잔과 파니니며, 크로쌍 같은 걸로 대충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맛이 '별'로였다.(물론 '별'이스타급이라는 뜻이 아님을 아시리라 믿는다)

노르웨이 여행을 하며 난 별로 맛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공항서부터 노르웨이에서는 맛난 음식을 찾기 힘들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형성되었고

지금까지도 노르웨이에는 별로 먹을 것이 없다는 편견은 

아주 당당하게 내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나같이 합리적인 사람이 노르웨이 음식을 맛없다고 대놓고 단정하는 건 물론 편견일 것이다.

교황청의 협박에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그 누구더라 이탈리리아 사람처럼(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건 내 편견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노르웨이 음식은 정말 맛 없다고 중얼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 누구도 노르웨이 돈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미국 달러와 환율을 계산할 줄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우리의 저돌적인 돈키호테 식 좌충우돌은 여기서도 나타났다.

신용카드로 일단 음식값을 지불하긴 했는데

도대체 얼마가 되는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몰라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나이 먹어가면서 이렇게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뻔뻔함이 나에서 발견되는데

노자의 '무위자연'을 그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다.

또 하나 이제민 신부님의 책 '수동의 영성' 또한 

나의 뻔뻔함을 조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물 흐르듯이 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


이건 여행지 노르웨이에 애한 최소한의 지식도 갖추지 못한

나의 예의 없음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오슬로 공항은 단 하나의 청사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내선이며 국제선 비행기가 거기서 다 뜨고 내린다.

국제공항이라곤 하지만 미국의 웬만한 국내선 공항보다도 작고 아담하다.

그런데 청사 천정을 보니 나무로 된 구조물이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아주 긴 유선형의 카누처럼 생긴 윤기 철철 나는 그 나무의 색이 참 아름다왔다.

노르웨이는 나무와 숲의 나라임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음식은 '별'로였지만 나무는 '별'인 노르웨이.


일단  여기서 숨을 고르고 가야 겠다.




노슬로 공항의 청사 천정

사진이 너무 어두워서 나무의 아름다운 때깔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트롬소로 가는 비행기 check- in

아랫 분 들의 몫이다.

내 몫? 먹는 것 빼고는 열외.

시키지도 붙여주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



공항 매점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여인

그 뒤에 다정한 연인의 화보.

매점 안의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