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annah의 St. Patrick's Day
예전의 Plantation이었던 Wormsloe를 한 바퀴 걷고 돌아나오며
지영이는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식당의 관계자는
차를 파킹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랴, 달리 갈 곳도 없어서
우린 무작정 GPS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Savannah 시내로 들어갔다.
시의 초입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빈 터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모든 공간은
차량들로 꽉 차 있었다.
이리 돌고 저리 방향을 틀어도 주차할 공간은 전혀 눈에 뜨이질 않았다.
공용 주차장도 빈 곳이 한도 없었다.
그렇게 퍼레이드가 이루어지고 있는 길을 피해 헤매다
드디어 노천 주차장 한 군데기 비어 있는 걸
사위 Brian이 빌견했다.
롯또보다 더 힘든 주차 공간 확보를 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몇 블락을 걸어서 식당에 도착을 해서 보니
그렇게 힘들여 찾아올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700년대에 지어진 큰 건물이었다.
''Olde Pink House'
Savannah 시내엔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탈 것으로 시내 관광을 하는 것이
하나의 특색임을 금시 깨달을 수 있었다.
뭐라 이름을 불러야 할 지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Bike Taxi라 불릴 것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의 물결 속에도
외로운 섬들이 곳곳에 있다.
예쁜 꽃들 속의
화려한 고독(?)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초록의 물결이 도시를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퍼레이드가 열리는
당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였는데
사실 축제의 시작은
전 주 금요일부터라고 한다.
조금 외진 거리의 구석에도
녹색으로 채워져 있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 시내를 헤매는 동안
Wormsloe에서 주워온
동백꽃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차의 창문을 열였고
겉 옷은 벗어야될 정도로 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차했던 곳 부근에선
밴드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했다.
그 연주는 퍼레이드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그 앞에서 흥겹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파킹 자리를 찾아낸
일등공신 Brian
식당 찾아가는 길에 만난 퍼레이드의
행렬 중 하나.
퍼레이드는 오전 10시경부터 시작해서
오후 2시 30분 쯤에 끝이 난다고 했다.
비교적 한적한 거리 모습.
Savannah의 St. Patrick's Day 퍼레이드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 두번 째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의 St. patrick's day를 경험하지 못해서
직접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작은 도시 전체가
온통 퍼레이드와 축제의 분위기로
빈 틈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다른 지방에서도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Savannah를 찾는다.
아침에 공항에서 스친
녹색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막차로 이 곳을 찾은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학교도 이 때에 맞추어 봄방학을 한다고 한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길을 지나고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도착한 곳이 지영이가 예약한 식당
중간에 여러 군데 'Irish Pub'을 지나왔다.
Irish 맥주에 찌든 냄새가 났다.
사람들도 벌써 취해서 얼굴이 벌건 사람들도 많았다.
'Olde Pink House'
1700년 대에 지어진 건물로
건물 내부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삐걱거리는 나무로 된 마루며
문, 그리고 장식으로 둔 모든 것들이
몇 백 년 전의 그것들이었다.
'Old'라는 단어 뒤에 왜 'e'가 붙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냥 오래된 분위기를 위해 의미 없이 쓴다는 대답이었다.
식당 안은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그득했다.
주문을 받는 속도며
음식을 만들어 내오는 시간이
뉴욕의 그것보다 엄청 느렸다.
30년을 그렇게 바쁘고 쉼표가 별로 없이
Allegro의 삶을 살아온 나는
남부나 서부의 Andante의 삶과 만나게 되면
평화를 느낀다.
-봄날 휴일 오후의 햇살처럼
그렇게 길게 늘어지는 평화-
음식맛은 명성처럼 OK
어딜 가도 남부의 음식은 좀 짜다는 생각이
진하게 머리에 들어와 박혔다.
식앙 옆 골목에서
지영이가 연출해서 찍은 사진.
마침 이 곳은 한적했다.
Savannah 시의 특징 중 하나는
네 길이 교차되는 곳에는
이렇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라의 '피아짜'처럼.
어느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는 동안
오직 한 사람만이 귀 기울여 듣고 있다.
바이올리스트는 이미 해탈을 한 것 같았다.
누가 듣지 않아도
자존심 같은 것도 바이올린 선율에 날려보내며
자신을 비우는 것 같았다.
.
식당의 옆 모습.
거리 모습.
어느 주차장 건물 입구
카트 속 아이는
꿈 속을 헤매고 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맨 뒤의 남자가 신은 양말엔
'Shamrock'무늬가 있다.
세잎 클로버
St. Patrick은 아일랜드의 주보 성인이다.
사람들에게 삼위일체를 설명하며
초록의 세 잎 클로버를 예로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St. patrick's Day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Shamrock"이다.
식사 후 우린 Riverside로 갔다.
강 옆으로 식당이며 술집,
기념풀 가게 같은 것이 늘어서 있고
길 위엔 사람들이 말 그대로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호텔에서 거리구경을 하는 사람들.
Brian도 목이 마른지
Irish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맞은 편에서 몰려오는 한 떼의 녹색 인파.
우리 식구들은 녹색 옷을 입지 않은 이방인임이 금새 나타난다.
아내는 자기사 선견지명이 있어
녹색 가방을 들고 왔다고 우겼다.
원색들의 집합
거리엔 퍼레이드와 축제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카트가 거의 골목마다
눈에 띄었다.
아가씨의 웃음의 색깔도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한적한 뒷골목의 담벼락.
처음엔 담이 하얀 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철빔에서 흘러나온 녹이
담의 일부를 얼룩지게 했다.
이렇게 시간도 녹슬어 간다.
St. Patrick's Day 축제도
처음엔 종교적 색채가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종교적인 색채는 빛이 바래고
축제와 유흥적인 요소만 점점 그 빛이 도드라지는 것 같다.
St. Patricks day는 보통 사순절 기간에 포함된다.
그리고 교회는
사순 기간이긴 하지만 이 날 만큼은
금식과 금육의 교회법에 관면을 허용한다.
오후가 되면서 길 곳곳엔
취한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널부러진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Savannah의 'John the Baptist Cathedral'
아르답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지만
성당의 문은 굳게 잡겨 있었다.
입구엔 누군가가 마시고 버린
빈 맥주 깡통 하나만 달랑 눈에 밟혔다.
공원의 분수에서도
녹색 물이 뿜어지는 오후.
어느집인 앞에 핀 철쭉.
마침 그 집 대문이 파란 색이었다.
이 할머니는 술에 흠쩍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매화가 한창인 거리로
Bike Taxi가 지나간다.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찬조 출연.
몰로니얼 시대의 복장 그대로.
어느 집 앞 화단에 핀 토끼풀.
바로 이 토끼풀의 잎이 St. patrick의 상징.
아내와 Brian
SAD(School of Art and Design)이라는 꽤 유명한 할교 앞의 분수.
균형이 맞지 않는 녹색 우산,
아니 양산
한가하게 Savannah 시의 거리를 거닐다 보니
모두가 피곤한 상태.
Savannah에서 45분 걸리는 South Carolina의
모텔로 돌아가서 쉬기롤 결정했다.
다리 하나 건너면 거기서부터 South Carolina.
모텔 뜰의 Mossy Oak.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신선 같은 나무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닿았다.
침대에 누워 피로를 푼 뒤
워싱톤에서 출발한 큰 아들을 맞으러
다시 Savannah로 출발할 때
이미 해는 지고 난 뒤였다.
아들을 만나
다시 모텔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의 소나무들의 실루엣이 지금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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