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내가 없는 일요일을 맞았다.
온전히 나혼자 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성당에서는 바자가 있어서 거기 잠시 들렸다가
펜실바니아 주의 Amish 마을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해지는 옥수수밭의 기억이
자꾸만 나를 잡아 끌었기 때문이었다..
성당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소영이가 날 불렀다.
지영이와 Brian이 집에 다니러 오는데
아빠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모처럼 오는 아이들과 식사는 해야할 것 같아서
나의 원대한 계획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내 머릿속도 온통 뒤죽박죽.
아침부터의 일정을 아무 논리도 없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Back to the Future)
축구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
타운 수영장 가는 길에
나뭇잎 사이로 햇살 몇 줄기가
떨어진다.
아직 나무에 물은 들지 않았고
나무를 휘감고 오르는 담쟁이만
빨갛게 볼이 달았다.
텃밭 주위에 지천으로 피던 망초의 꽃잎도
내 머리카락처럼 빠지기 시작한다.
달걀 노른자 같은 노란 꽃술이
사라진 꽃들도 제법 많다.
쇠락의 게절(Fall)이다.
영어가 그리 형이상학적인 언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fall이라는 단어 때문에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다.
마를대로 마른 들깨씨에서는
고소한 향기가 난다.
오늘 같이 바람이 부는 가을날에는
오렌지 향기가 아니라
'들깨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가 제격이다.
텃밭 담장 밑에 심은 봉숭아의 꽃잎도 다 지고
씨방이 맺혔다.
'touch-me not'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텃밭에서 거두어들인 수확물.
그리 많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 자연의 넉넉함,
그리고 관대함.
나이 들어 농사를 짓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호박은 내 팔뚝만하다.
아내가 있어야 부침개를 하든,
된장찌개를 하든 할텐데----
살짝 익힌 후 갈아서 Sadie의 맘마를 만들기로 했다.
아직 여러개의 호박이 자라고 있다.
무우는 대충 보니 내 주먹만하게 자란 것 같다.
얼마나 긴 지는 알 수가 없다.
다육이들도 빨갛게 물이 들고----
아까운 줄도 모르고
풍성히 피던 장미도 거반 다 지고
한 송이가 피어 명백을 있고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 앉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신경숙의 소설 '어마를 부탁해'의 영향인 것 같다.
엄마가 죽어서
새가 되어 집 뜰에 날아든----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성당에 가서 10시 미사를 하고
바자에 가서
어묵국과 호떡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지영이와 Brian이 왔다.
Brian이 자기 모자를 Sadie에게 씌우니
Sadie가 싫어했다.
몇 번 계속했더니 울었다.
어린 아이에게도 싫고 좋음이 있는 걸 보면서
모든 인간은 독립된 인격체라는 생각을 했다.
존중하고 존중 받아야 할----
엄마와 딸이 같은 신을 신었다.
지영이가 수제비를 먹고 싶다고 해서
클로스터에 있는 식당'봄'에서 식사를 했다.
Brian도 매운 수제비를 한 그릇 거뜬히 비웠다.
식사를 하고 나니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졸음이 왔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눈을 감고 쉬다 일어났다.
해가 벌써 많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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