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을 냈습니다.
이 가을이 다 가도록 사진 한 장 못 찍고
계절 하나를 하릴없이 보낼 뻔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가을을 보내는 일이
첫 사랑과 헤어지는 것 같이
가슴 아린 일이 되었습니다.
Brooklyn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디 다니는 것이 쉽질 않습니다.
화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가
수요일 아침 잠시 시간을 만들어
사진을 찍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 그런데 너무 어둡습니다.
미리 날씨 같은 걸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서두르다 보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조건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추워야 할 날씨가 미지근 한 겁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하며 새벽엔 쌀쌀한데다가
햇살 맑으면
아주 상큼한 가을의 색을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벼르고 별러 가는 날이 장날입니다.
Overcast.
나같이 내공이 없는 사람은
카메라 잡기가 망설여지는 날씨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시간을 짜 냈는데
아무 곳이라도 가야지요.
만만한 곳이 Seven Lake.
도착해보니 날씨가 흐린데다
사방이 캄캄합니다.
그래도 어쩝니까.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대충 어떻게 사진이 찍힐 지를 알기에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만----
어두운 주위, 흐린 하늘.
멀리 산 너머로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해가 날지도 모름다는 헛된
희망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흥미를 갖는 것이
스러져가는 것들입니다.
스러져가는 존재가 갖은 애잔한 슬픔 같은 것에
묘하게 끌립니다.
저 건물과 처음 만난 것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보질 못 했습니다.
이유? 모르겠습니다.
어젠 날이 너무 흐렸기 때문입니다.
길 한 편에 있는 두 나무.
붉은 색과 노란 색의 조화가
그럴듯 한데 날이 흐려서 영 색이 칙칙합니다.
여기 저기서
추억처럼 가을이 지고 있습니다.
날이 흐려서 마음까지 어두웠는데
비까지 내립니다.
아름다운 가을을 담아가고 싶었는데
다 틀렸습니다.
호숫가로 갔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내 마음에도 ----
잠시 물 위에 떨어진 빗방울은
파문을 그리거나 물방울을 만들지만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빗방울을 바라보며
슬퍼졌습니다.
소멸하는 존재들의 아픔들--------
바람이 부니 물에 무늬가 생겼습니다.
밝음과 어두움.
어두웠던 부분도 바람 한 줄기에 다시 밝아지고
밝았던 곳도 어두워집니다.
어둠도 밝음도 하나입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 사에에 생기는 갈등은
다 분별심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도 말입니다.
빗방울 하나
내 마음에 떨어졌습니다.
빗 방울은 죽비처럼
분별심에 빠진 나를 깨웠습니다.
아, 흐리고 비 내리는 가을도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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