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날이 흐렸습니다.
사진 찍으로 나갈까 말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찾은 곳이 Bear Mountain.
단풍도 다 지고
저 먼 산 너머로 해도 다 졌습니다.
Hudson 강 옆 늪지대의 갈대밭.
빛도 그렇고 사정이 영 좋질 않습니다.
명암의 차이가 너무 커서
사진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한 계절이 지고
히루 해가 떨어지고-----
끄트머리께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애잔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버리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이미 해는 넘어 갔습니다.
빛의 기운이 조금 남아서
갈대의 머리 위에 부서지고 있습니다.
물 속에 하늘이 잠기고,
갈대가 잠겨 있습니다.
잠시 후면 이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 잠길 것입니다.
언제고 때가 되면 찾아올
삶의 끝머리에서 마딱뜨릴 그런 느낌들과
미리 만나는 시간입니다.
계절은 깊어가고
날은 점점 어두워 지는데-------
갈대밭 주변의 어느 나무엔
빨간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뭇잎 지고 난 자리에 남은 열매,
그리고 그 안의 씨앗들.
하루의 끝, 그리고 계절의 끝자락에서 만난
이 빨간 열매에서
어둠이 지난 가면 또 다시 떠오를 해와,
겨울이 지나 가고
또 다시 돌아올 봄을 예견하는
희망을
살짝 엿보았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빨간 등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열매를 보면서-----
해가 너머간 산 중턱은
이미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갈대밭 사이의 저 두 나무.
모진 겨울을 함께 나야할 동반자입니다.
저 두 나무를 보면서
나 안심했습니다.
어둠이 깊고
겨울이 혹독해도
함께 시린 가슴 비비며
같이 갈 동반자가 있으므로------
나도 이 자리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들에
마른 풀잎들이 남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갈대 서걱이는 소리와 함께
마른 풀잎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해질녘의 마른 풀잎의 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을 적십니다.
물 속에서 놀던
오리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철새에게도 집이 있었던가-----
어두워지면서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해지고
집이 없는 사람은 더욱 더 외로워질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만날 어둠-----
가을을 떠나 보내러 이 곳을 찾은 저 여인도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시간.
등불을 밝히고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는 손은
참으로 외롭기 때문입니다.
곁으로 스치지도 않았던 저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저녁 어둔 길을 가는 모든 존재들과
그들의 그림자에게도
따스함이 함께 하길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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