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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You take my breath away

 

You take my breath away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도 그치지 않고 내린다.

주중에 부르클린에 살면서부터는

출퇴근하는 수고로부터 해방이 되어서인지

일기예보에도 통 관심이 가질 않더니,

이리도 추적추적 그칠 기미가 없이내리는 비에조차 무관심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인터넷으로 날씨를 알아보았다.

열대성 폭풍(Andrea)이 이미 플로리다를 강타하고

동부 해안을 끼고 북상 중이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세차게 몰아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다른 업종도 그렇겠지만 세탁소는 비가 오면

영 할 일이 없어진다.

음악이나 들을 요량으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음악 방송에 접속했다.

비 오는 날은 보통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으로 시작하는데

오늘은 얼마 전에 사귀게 된(사귀게 되었다는 건 물론 일방 통행이다)

 Eva Cassidy에 끌렸다.

 

-깊은 속까지 푹 젖은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리워진 것이다.

마침 첫 노래가

'You take my breath away'였다.

 

-내 숨을 앗아간 사람.

-내 숨이 멎었던 순간.

 

내 기억은 내리는 비를 거슬러 1079년 4월인가 5월의

어느날로 돌아갔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였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일과를 끝내고 학교 근처의 다방에서 

그녀를 만날 약속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어두운 다방에 들어섰고,

그녀를 본 순간,

 

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니 숨이 멎었었다.

내 머릿 속은 아무 생각 없는 백지 같은 상태가 되었다.

'황홀'이라는 단어가 꼭 그런 때 쓰기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았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 피어난 장미 같았다.

누가 장미를 요염하다고 했던가.

그녀는 그런 장미가 아니라

아주 청초한 장미였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고 싶다는 열망이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난 그 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지는 못했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도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replay 되었다.

 

그런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광주의 보병학교로

가야할 운명의 트랙 위에 있었다.

 

보병학교로 떠나며 그녀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다.

아름답고 순수한한 것을

그냥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싶다고-------

 

 그래야 아주 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로맨티스트였다.

아주 설익은--------

 

그녀와의 첫 입맞춤은

그로부터 한 일년 쯤 흐른 뒤에야 성사(?)가 되었다.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두 가지가  큰 고통이었다.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들을 수 없다는 것과,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두 고통이었는데,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고통은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워지는 고통은

바람을 넣어도 터지지 않고 계속해서 부풀기만 하는 풍선같이

그 크기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그리움이 바로 고통이었던 시간들.

 

지옥이라는 곳은 바로 희망이 없는 곳이라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그리움은 커져만 가는데 볼 수가 없다면 그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애초에 그리움이 없었다면 희망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리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내겐 희망이 있었고

희망은 날 견디게 해주었다.

6주인가가 지나면 외박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보고 싶다'하는 단어를 쓸 때에는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첫 외박을 나왔던 4월 어느 날,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다가 다시 몸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다.

입술끼리 닿았는지 아니었는지는

아직도 혼미할 뿐이다.

그것도 입맞춤이라고 할 수 있을 있을까?

 

그러나 내 숨을 앗아간 댓가를 그녀도 치르어야 했다.

난 그녀의 입술을 가져왔다.

상처가 나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마조마하게.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

그녀에게 입을 맞추어야 겠다.

 

아니 그녀의 입술을 빼앗을 것이다.

그냥 설렁설렁이 아니라

야무지게 빼앗을 것이다.

그 옛날 내 숨을 빼앗은 그녀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그녀의 입술을 빼앗을 것이다.

 

30 몇년 전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의 입술을.

 

도대체 왜그러느냐고

혹시 그녀가 물을 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비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 사귄 Eva의 노래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어찌되었든 내 심장은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난 저녁이면 그녀를 볼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까 말이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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