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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음악 이야기 하나 - 행진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들국화의 행진 1절)


 

내게 지상에서의 즐거움의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그 첫 머리 언저리에 음악을 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너무 바쁘게 사는라 음악을 듣지 못하고 며칠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면

군대에서 비상대기를 위해 군화를 신은 채 잠을 잘 때처럼

무언가 개운하지 않고 찝찝한 느낌이 내 속에 꽉 차는 것 같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누군가가 나직하게 말을 걸거나 노래를 불러줄 때도

음악을 듣는 것처럼 포근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사춘기 때는 노래 잘 하는 여학생에게

비밀스런 연정을 품곤 했다.

사추기에 들어선 지금도 그런 성향은 여전하다.

 

포근하고 달콤한 소리에 대한 욕구가 유달리 강한 이유는

내 잠재의식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아야 알겠지만

유소년기의 외로움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대개가 조화롭고 감미로운 장르에 한정된다.

들국화 같은 그룹을 한국에 있을 때는 알지도 못했지만

설사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범주에 속했을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는 딱 질색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도 마음껏 웃고 떠들어도 다 용납이 되었지만

scream할 때만은 견디지 못하고 나도 소리를 질러

아이들의 입을 막곤 했다.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라곤 거의 하지 않는 나이지만

시끄러움은 비록 사랑스런 아이들 입에서 나와도

참질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옥은 시끄러운 소리를

귀를 막을 수도 없이 끊임 없이 계속 들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내가 들국화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런 내가 지난 주일엔 들국화의 음악 몇 곡을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LP판 중에 들국화의 live concert를 녹음한 것이 있어서

턴테이블에 올려서 들었다.

 

1985년엔가 녹음된 이 음반은 앨범 자켓에 살짝 곰팡이가 슬어 있을 정도로 내 손을 타지 않았다.

예전에 누군가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듣고 싶다고 청해서

한 번 들려준 적은 있어도 내가 스스로 들은 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첫 곡 '나의 살던 고향'을 들으며

시끄럽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Hard Rock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슬며시 거두어 들였다.

제법 감미로운 것이 내 귀를 끌어당겼다.

드디어 '행진'이 시작되었고 

귀를 기울이는 동안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나의 고등학교 시절.

 

원하던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와 한 울타리에 있는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의 어둠은 시작되었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온통 어두움 뿐이던 시절.

꿈이 싹트고 자라야 할 시간에

내가 숨쉬는 계절은 늘 겨울이었다.

나는 땅 밑 깊은 곳으로 들어가 스스로 나를 가두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 별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정으로 바라볼 눈이 내겐 없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겐 변변한 추억 하나 없이 어둠만 하나 가득 가슴에 품고

고등학교 시절과 이별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찾아보아야 할 교정도

만나고 싶은 친구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은 그렇게 주어야 할 것도 받아야 할 것 도 없는

0이라는 숫자로 내 삶의 시간표에 기록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마치고

잠시 교편을 잡다가 미국으로 이민와서 30년 가까운 새월을 살았다.

그렇게 단절되었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그리운 장소, 그이워해야 할 친구도 없이

고등학교 교문을 떠난 지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내 삶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내 삶의 여정에서 그늘진 부분이 있었다.

 

고등학교 3년.

 

아무리 지금까지 내가 잘 살았다고는 해도 그 3년은

주홍글씨로 내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었다.

내가 지난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시간과 화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Back to the Future'같은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시 만나

그들과 화해하고 이제부터라도 다시 우정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영 서툴기는 하지만

고생고생 한 끝에 인터넷을 통해 고등학교 동기 카페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우정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마톨릭 영성가인 Thomas Mutton의 말을 빌지 않아도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일이다.

그 어두웠던 시간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밝은 곳으로 빼어내고

다시 미래로 행진하는 일.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내 마음의 그늘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었다.

'행진'이라는 노래는 그런 의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행진.

그래 과거로의 행진, 그리고 다시 현재로의 행진,

또 미래로의 행진.

과거의 어두움이나 아픔과 화해하고

앞으로 힘차게 가기 위해서는  과거로의 행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것을 하고 있다.

 

난 '행진'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고백성사를 보고

보속을 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맛 보았다.

 

그래, 우리 모두 행진하고 있는 거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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