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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서부 여행

Mesa Verde 가는 길

 

 

 

Phoenix공항에 도착한 것은 점심 때 쯤이었다.

마침 비행기에서 내리니 배가 고팠다.

공항엔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장인, 장모님과 더불어

막내 처남이 조카 둘을 데리고 나왔다.

막내 처남은 우리가 다녀올 곳을

표시한 지도를 건네 주었다.

첫날 묵을 호텔까지도 이미 결정해 두었다.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접선을 해서

비밀 지도를 건네 받고 그 지도에 표시된 곳에 침투 했다가

다시 귀환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이었다.

돌아올 때도 장인 장모님 댁엔 들리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직행하도록 계획이 세워졌다.

나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알 생각도 하지 않고 따라나선

일종의 '묻지마 여행'이었다.

머리를 쓰는 일이 수월하지 않을 뿐더러

이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이 귀찮아져서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가 내 삶의 신조가 되고 말았다.

 

 

 

 

 

 

장인께서는 8안승 SUV를 준비해 두셨다.

여덟 사람이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 빌린 Chevrolet Suburban은

여행 내내 제 몫을 단단히 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도 그다지 힘겨워 하지 않았다.

Mesa Verde 꼭대기의 어느 곳인가에 잠시 멈추었을 때 보니

주차된 차가 모두 같은 차종이었다.

거의 6000 CC에 가까운 배기량을 가진 이 차는

한 번 개스를 채울 때 100여 달러가 들었다.

달리면서 보니 개스 게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완전 기름 먹는 하마였다.

차 안에는 장모님께서 준비하신 밑 반찬이며

과일, 군것질 거리가 가득 실려 있었다.

장인 어른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을 꼬박 준비하셨다는데

누구보다도 장인 어른이 잘 드셨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공항의 주차장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집에서 직접 농사 지으신 상추며 쑥갓의 싱싱함은

여섯 시간 비행으로 조금은 지쳐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어머니 마음의 끝은 어딘지.

 

 

 

Phoenix 공항의 Cell Phone 주차장.

파킹장의 주차료가 제법 부담이 되기에

이런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으면

이 곳에서 나와 승객을 픽업하면 된다.

비행기가 언제 도착할 지 몰라 공항 청사 주위에 정차하는 일이 분명 줄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보니 JFK 공항에도 새로 생겨서

이용한 적이 있다.

 

 

 

Arizona의 흔한 풍경이다.

이렇게 키가 큰 선인장도 있고

키 작은 선인장도 있다.

선인장 꿀이 유명하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눈 앞에 전개되는 경치.

변화 무쌍한 경치에 입이 벌어졌다.

미 동부에 살면서

숲과 나무가 있는 환경에 길들여진내 눈은,

마냥 새로운 서부의 사막 경치를 바라보느라 피곤한 줄을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내와 처제는 뭐 이런 걸 찍느냐 핀잔이다.

나중에 훨씬 신기하고 근사한 것도 많다고

한껏 들뜨기 시작한 나를 주저 않혔다.

그렇지만 그런 말 한 마디에 주저 앉을 내가 아니다.

 

 

 

벌판이 끝나고 산이 보였다.

그닥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산 꼭대기엔 눈이 아직 남아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 이전에도 길이 있었고

저 너머 앞에도 길이 있다.

그렇게 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일도

길을 이어가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우리 조상과 나,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는 시간들이 이어져

시간의 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의 길이 곧 역사인 것을.

시간 속의 한 점, 그것이 나다.

 

 

 

열 유리차에 비친 구름과 하늘이

무척 한가롭다.

모든 걸 등 뒤에 남기고 떠나와서인지

내 마음도 저 구름처럼 무심하게 한가롭다.

때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날 필요가 있다.

 

버리면 이리도 자유로운 것을.

구름처럼 물처럼 자유롭기 위해 떠나는 일,

그것이 바로 운수행각이다.

 

 

 

길 저 편에 작은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몇 백 년 전에는 아마도 텐트를 친 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 황량한 곳에서 살면서도

미 원주민들에게도 무슨 꿈이나 기쁨 같은 것이 

있기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원주민의 어떤 추장이 지었다는 글 몇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햇빛과 공기, 그리고 물과 같은 자연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영혼의 향기가 솔솔 나는 글을 통해

참 맑고 아름다운 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원주민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자연이 꿈이었고

삶이 자체가 운수행각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 해의 며칠을 이렇게 사는 나와

늘상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자연을 살아가는 원주민들 중,

누가 더 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무료한 햇빛 아래에 길은 아주 게으르게게 이어지고

창 밖의 풍경도 조금은 시들해졌다.

공항에서 우리가 첫 밤을 묵을 호텔까지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햿다.

거의 500마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900킬로 미터다.

 

"그 긴 거리를 혼자 간다면?"

 

참으로 막막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행이 모두 여덟이 아닌가.

무료함이 1/8로 줄었다.

길벗이란 무료함을 덜어주고

즐거움은 몇 곱으로 주는 존재이다.

 

여행길에서나, 인생의 길에서나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소중한 길벗인 것이다.

 

 

 

 

운전은 주로 막내 동서가 했다.

평소에도 찬찬하게 운전을 잘 하기에 만장 일치로

운전대를 맡겼다.

물론 "혜진 아빠 (막내 동서의 큰 딸 이름이 혜진이다)가 아무래도

운전은 최고로 잘 하지."하며 우리 모두 꼬드겼고,

우리 속셈을 알아도 모르는 체

막내 동서는 기분 좋게 운전대를 잡았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초행길인 혜진 아빠에게도 흥미로왔을 것이다.

잠시 옆으로 한 눈을 파는 기색이 있으면

장인 어른께서 한 마디 하셨다.

 

"구경은 우리가 할 테니 혜진 아빠는 운전이나 잘 해!"

 

장모님과 함께 다니시며

장모님께 늘 들으시던 소리였다.

장인께서는 장모님께 하고 싶으셨던 복수를

막내 사위에게 유괘하게 하셨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시간에 같은 길 위에 함께 있었다.

 

함께 하는 공간,

같이 나누고 있는 시간.

 

그것들이 나중에 기억, 혹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으로 기적처럼, 정말 기적처럼

살아가는 힘을 얻을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을

정성을 다 해서 사랑해야 한다.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에 빠지며 길을 가다 보니

우리의 등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일몰.

 

늘 해가 질 때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죽음이 떠 오르기 때문이다.

언제고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도 작별할 시간이 올 것이다.

 

 

어둠이 몰려오는 시각에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나의 사랑은 늘 부족하다는 것을.

나의 사랑이 저물기 전에

사랑해야 하는 일을 미루면 안된다는 것을

해가 질 때마다 새삼스레 깨우치는 것이다.

 

그렁 까닭으로 어둠의 시간은

축복의 시간이다.

그렇게 길 위로 성스러운 어둠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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