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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서부 여행

Arizona 가는 비행기 안에서

 

벌써 두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2 년 전, 3월이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와 두 처제 부부,

그리고  Arizona에서 합류하신 장인 장모님과

Arizona와 Utah, Colorado를  다녀온 것이.

 

나이 들면서 사간은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마치 난폭하게 달리는 시내 버스에 서 있기나 한 것처럼

당최 시간과 세월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힘이 들어진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면서

분명 감탄사를 질렀던 기억이 있는데도

그것이 언제, 어디여서였는지

마치 기억을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하얀 백지 상태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 아릅답고 소중했던 기억이기에

사진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또 기억의 먼지도 털면서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우리가 어느 공항에서 출발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JFK공항이었는지, 아니면 Newark의 Liberty 공항이었는지.

이럴 때 조금씩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치매는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머리에 맴돌며 떠나가질 않는다.

 

 

비행기는 어딘가를 날고 있었는데

어디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긴 세월 미국에 살았어도 내 집, 내 일터라는 경계를

벗어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본다.

사실 지리라는 과목 자체를 난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당장 눈 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하물며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볼 능력도 마음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 곳은 아마도 미시간 호수일 것이다.

비행기로 긴 시간을 날아도 여전히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름만 호수이지 바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넓다.

넓다는 것, 크다는 것에 대해 외경심이 든다.

얼음이 아직 호수 위를 떠 다니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혹시 이 비행기가 저 호수에 추락한다면?"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 왔다.

살아가면서 생기지도 않았고, 생길 일도 거의 없는 일에 묶여

두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끔 있다.

사람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언젠가 캐나다의 Nova Scotia의 Fairfax라는 곳에 크루즈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배 위에서 잠시 두려움에 잠긴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 올랐다.

이런 허상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내며, 근심하며 살아가는 인간들.

 

원효 대사의 '일체유심조'

그러나 길은 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어느 곳인가 지날 때는 눈이 녹지 않았다.

Arizona 피닉스 공항에 도착하니 그 곳은 화씨로 80도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년 내내 눈이나 얼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 세상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그런 무지는 오만을 넘어 죄악이기까지도 하다.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호수가 끝나는 곳,

강물 줄기가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수가 끝나는 곳에서

강물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끝이지만

누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은

삶의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기막힌 삶의 신비일까.

 

 

물과 뭍의 경계선

뭍에는 신경처럼 길이 나 있다.

사람이 가는 곳에는 늘 길이 있다.

보이는 길,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물이 시작되는 곳에서 길은 멈추었다.

 

 

서정주 시인의 시 바다에 이런 귀절이 있다.

 

 

'길은 아무데도 없고

길은 결국 아무데나 있다'

 

 

젊은 시절 이 시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

내가 걸어가는 일이

길인 것이다.

 

갈 수 없는 허무한 물 위에

배를 만들어 띄운 사람들.

그리하여 물 위에도 무수하게 길이 생겨났다.

 

 

그런데 요즈음의 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박제.

 

더 이상 걷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말과 같다.

 

 

Arizona 혹은 Colorado 어디쯤일 것이다.

사막에도 길은 있다.

처음으로 저 길을 간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혼자 가는 길.

길을 물을 사람 조차 없을 때의 그 막막함,

그 고독.

그 고독의 무게를 홀로지고 가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산 위의 녹지 않은 눈 때문에

가슴 설렜던 여행이었다.

눈 덮인 산만 보면

왜 그리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더 걸어가야 할 길이 있어서 일까?

저 눈 덮인 산의 신비로움은

지금도  그 경이로움의 양이 하나도 녹지 않고 그대로이다.

가슴이 뛰니

아직은 살아 있나 보다.

 

 

드디어 피닉스 공항 도착.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설레임과 호기심이

슬슬 똬리를 트는 걸 보면

아직 심장의 피는 뜨겁지는 않을지언정

식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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