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파리 여행

파리여행 - 로댕 박물관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곳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로댕의 박물관이

있다고 했다.

나야 조각을 보아야

다 그렇고 그런 것 같아 별로 내키질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대중이 원하는데.

 

 

 

누군가 하수도 뚜껑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릴을 갈비뼈로 생각해서

그려놓은 해골.

남녀 한 쌍.

으시시해야 하는데

그냥 웃음이 나왔다.

 

 

 

저 모퉁이에 있는 건물이 로댕 박물관이다.

왼쪽으로 가면 입구가 있는데

문은 닫혀 있었다.

내부 공사 중, 4월인가에 다시 열 예정이라고 했다.

난 아쉬울 것 하나 없는데-----

일행들은 무척 아쉬워 하는듯.

 

 

로댕 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공원

프랑스의 어떤 장군님의 동상이 있는데

생전에 개를 무척이나 무서워하셨거나

싫어하셨던 것 같다.

유언이었는지

개는 가까이 들이지 말라는 사인이 있다.

아내가 개띠인데

개띠도 못 들어가는지?

 

 

 

 

금으로 칠한 돔 아래 어딘가에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고 하던데.

죽으면 그만인 것을.

뭐 그리 땅따먹기를 하느라

세월 다 보내고 거기 묻혀 있는지.

 

 

 

박물관 돌담길 한 부분에 손상이 갔다.

잘 보면 한 아이가 밖을 내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

그것 참.

인간의 호기심이란-----

 

 

 

 

철로 된 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넣고 찍었다.

로댕의 작품들이 여기 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 거지?

 

 

사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사진을 통해 무수히 보았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

실제로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먼 발치에서라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들었다.

그래야 그걸 보았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으니까.

내 자신이 너무 통속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답답했다.

 

 

다들 위대한 작품이라고들 하는데

전혀 위대한 점을 찾지 못하는 내 눈, 내 감성.

 

 

아, 나의 교양 없음이여.

 

 

훌륭한 조각가의 걸작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예술을 하고 그 예술에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심미안이 없다는 건-------

 

 

 

 

 

 

드디어 찾았다.

창살 주변에 자라는 나뭇잎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생각하는사람'이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빨간 망토를 입은 여자 아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솔직히 조각보다는 그 여자 아이의 존재가 더 흥미로왔다.

출입이 금지된 저 곳에 들어간 저 아이는

과연 무슨 특권이 있는 존재일까.

 

 

빨간 모자와 빨간 망또가 내 눈을 끌었다.

 

 

 

 

 

나뭇일 사이로 보이는 생각하는 사람의 등.

그리 춥진 앓아도 명색이 겨울인데

벌거벗고 있는 저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가 어릴 때 장난 삼아 하던 말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내 빤쓰는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아내는 아쉬운지 잠긴 출입문까지 갔다 왔다.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식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박물관 열의 작은 문으로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고 오면 어떠냐고

아내가 부탁을 했다.

내게 아내의 부탁=명령이다.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식당 밖으로 나와

박물관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이건 완전히 맨 땅에 헤딩하는 수준이다.

 

 

인터폰에서 누구냐고 묻는 것 같았다.

영어로 간절히 이 곳을 방문하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물었다.

내 목소리에 간절함은 없었을 것이다.

안 되는 일을 가지고 이런 일을 시키는

아내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만 묻어났을 것이다.

즉시 영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한 마디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약간 언성을 높였다.

내가 사람들 드나드는 것 다 봤는데 왜 나는 안 되냐고

교양있는 태도는 잃지 않고 되물었다.

그 사람들은 직원들인데 점심시간이라 식사하러 드나드는 거라고 했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Sorry"

풀죽은 목소리르 남기고 쓸쓸히 돌아서서

식당에 가 다시 먹는 일을 걔속할 수 밖엔.

 

 

아내의 철학.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 것.'

자기도 그렇게 살며

나에게도 반쯤 강요를 한다.

이럴 때 심부름 다니는 것은 내 몫이다.

 

 

때론 성공할 때도 있고

이처럼 허무하게 자존심 무너지는 때도 있다.

 

 

9.11 이후 휴스톤에 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김여사가 신분증을 집에 놓고 왔다.

공항에서 검색의 강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난 집에 가서 신분증을 가지고 와서

다음 비행기를 타자고 했다.

공항 직원도 벌금 없이 기꺼이 다음 비행기로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김여사가 자기는 이번 비행기를 꼭 타야한다고 우겼다.

 

돈키호테 식 맨 땅에 헤딩하기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수퍼바이저가 지나가다 보았다.

가까이 오더니 나와 아내를 번갈아 보고

내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허락을 해주었다.

아내는 따로 정밀 몸수색을 받아야 했지만

우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보내는 주지만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하라는 단서와 함께.

 

 

이런 일이 있으니

우리 김여사 기고 만장이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어"

 

 

확실한 신분증 없으면 비행기를 태울 수 없다는

원칙을 정했으면 지켜야지 왜 예외를 두느냐 말이다.

 

 

이 일 때문에 내 삶이 조금은 더 고달파졌다.

 

 

그래도 우리 김여사는

맨 땅에 헤딩하고 골까지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곳에

병 뚜껑을 가지런히 늘어 놓았다.

난 사실 이런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담장 안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보다

길거리의 병뚜껑이 더 예술답다.

그리고 길 위에 하수구 뚜껑을 이용해 그린 해골의 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왜 그랬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러다 그린 사람의 마음을 느껴질 때

오르가즘을 느낀다.

 

 

살아가는 일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신앙은 신과 소통하는 일이다.

 

 

여행은 내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는

생소한 사람들과, 또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함이다.

 

 

아내와 살아가는 일도 일종의 'jourrney'다.

맨 땅에 헤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아내와

몸을 사리는 내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조율해가며 함께 가는 길이 바로 여행이다.

내 삷의 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