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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생일선물과 음악회

 

내 생일은 음력으로 9월 1일이다.

호적에도 음력 9월 1일로 올려져 있다.

그런데 음력생일을 양력으로 따져서

생일을 찾아먹기가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다.

나부터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라고 하면

그러지 않아도 챙기는 일과 거리가 먼 내게

생일은 애초부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10여년 쯤 전에 아내가

모든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어버렸다.

엎드려서라도 절은 받아야하니까 말이다.

 

아이들도기억하기 쉽다.

그러니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생일을 챙겨주고

챙겨 먹는다.

 

올핸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New York Phillharmonic 연주회 티킷을 사주었다.

이것도 사실은 아내의 계략이다.

티킷을 사면 어디 하나만 사게 되나,

당연지사 두 장이다.

아내 생일엔 내가 덕을 보았고

이번엔 아내가 내 덕을 보았다.

영리한 아내를 두니 여러 모로 이익이다.

 

 

 

 

 

생일 축하 카드

 

 

그리고 선영이가

우리만을 위한 연주회 초대장도 만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10월 31일의 연주회는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취소되었다.

 

그래서 다른 콘서트로 바꾸어 스케줄을 잡았다.

 

바로 어제가 그날이었다.

12월 5일.

 

오후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도 음악회에 온다고,

그러더니 선영이도 함께 한다고 연락이 왔다.

Box office에 가서 학생 할인 티킷을 구입한 모양이었다.

티킷 한 장에 단 $.16.00

그것도 오케스트라 석.

 

 

 

 

Andre Watts의 피아노와

New York Phil의 연주가 어우러진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압권이었다.

 

내가 잘 모르는 Andre Watts는

어제 우리가 갔던 연주가 99번 째,

그리고 오늘(12월 6일) 할 연주가 New York Phil과의 100번 째가 된다고 한다.

 

1962년 16 살의 나이로 번스타인에 의해

청소년 음악회를 시작으로

연주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Andre Watts.

 

그리고 TV로 중계된 그 연주가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당대의 내노라 하는 한 피아노 연주자가

며칠 뒤에 예정된 음악회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연주를 할 수 없어서

대타로 New York Phil과 협연을 하게 되었단다.

겨우 열 여섯 나이에.

자기 엄마와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의 음악을 보여주기 위하여.

얼마나 떨려야 하고

겁을 먹어야하는 무대인지도 모른 채.

Yes 라고 응답하며

겁도 없이,

아니 겁이 없어서  시작한 연주 생활 50년.

 

 

머리엔 허옇게 서리가 내렸어도 

Rachmaninoff의 광기 어린 정열이

그의 손끝에서

그리고 온 몸에서 다시 살아났다.

 

예순 여섯의 이 피아니스트.

 

 

 

연주회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밖은 많이 추웠다.

Lincoln Center의 앞길, Broadway에

 Lincoln Center의 연주회와 Juilliard를 알리는

포스터가 늘어서 있다.

그 중에 우리 아들 민기의 연주 사진이 있는 포스터도 있었다.

누가 알려주어서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긴 처음이다.

아마 민기가 12학년 때의 사진일 것이다.

신기, 신기.

 

 생일 선물로 받은 연주회 티킷보다도

제 자리에서 커가는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선물이다.

 

집에 오는 길에 32가 코리아 타운에 들렸다.

만두와 떡볶이, 오뎅 같은 것들을 사서

차에서 나누어 먹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행복해 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식구다.

 

 

Andre Watts의 피아노 소리도

New York Phil의 하모니도

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아이들이 후루룩 쩝쩝

떡볶이를 먹고

오뎅국물 마시는 소리가 더 좋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뒷풀이가

New York Phil보다도 더 살아있는 음악 으로 들리니

아, 어찌한다

이미 중증에 접어든 내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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