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은
일본작가의 책 제목처럼
하늘이 투명에 가깝게 푸르렀다.
햇살은 또 얼마나 눈이 부시었던지.
혼자 길을 떠났다.
집에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지난 번에 다녀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너무 호젓해서 혼자이고 싶을 때
혼자 걸으며
혼자가 되는 길.
길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걷는 곳.
그리하여 내가 길이 되는 곳.
내가 찾지 않아도
길은 늘 그렇게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가지 않는 길은 빗장을 걸어닫을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그 길을 가기에
길이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숲길은 대부분 어둠이 채우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이 길을 걸으면 그다지 더운 줄 모른다.
8할이 나뭇잎에 가리워진 그늘로 이루어진 길.
빛이 만들어내는 그늘.
빛도 그늘도
길의 일부다.
혼자 가는 길이어도
많은 풀꽃들이 내 발길 옆으로 도열해 나를 맞아주었다.
예쁜 녀석들.
난 하느님의 정원을 거니는 것이다.
벌레 먹은 잎사귀가
가을 햇살을 받았다.
벌레 먹었지만 성한 부분에서는
푸르게 삶의 빛이 난다.
많이 너덜너덜해진 내 영혼 어디엔가도
아직 성한 부분이 있어
가을 햇살 받으면
반짝 반짝 윤이 날 수 있을까
내리막길을 가다가 나보다 앞 서가는
내 그림자와 만났다.
그림자로 해서
내가 살아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존재.
누군가에게 지금 이 그림자와 같이
존재를 일깨워준 존재로 산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길 앞에선
누군가의 스승일 수 없는 것이다.
아, 길이야말로 참다운 스승이다.
가는 길 내내
곳곳에서 초롱처럼 불 밝혀
내 마음을 비추던 이 꽃.
숲 속엔
거미집이 많기도 하다.
집은 내게 평화와 안식의 의미로 여겨지는데
거미에게 집은 무엇일까
아마도 긴장과 긴장이
이어지고 엮여진 곳이 아닐까.
무언가 먹잇감을 기가리는 동안의 긴장,
그리고 무언가 거미줄에 거렸을 때의
출렁이는 긴장.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거미줄에서
숲 속의 조용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밝게 웃던
노란 꽃
하얗게 마른 꽃.
어둠을 배경으로
흰 빛이 눈부시다.
어둠으로 해서 빛도 존재할 수 있는 것.
빛과 함께 어두움도 껴안을 수 있음이
견성이 아닐까
분별이 없어지는 경지
강물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이 꽃은 속 깊은 강물처럼
소리없이 하얗게 익어가고 있었다.
저 꽃잎을 털면
강물소리가 흘러나와
흩날릴 것 같았다.
어둔 곳을 밝히며
강물이 흐를 것 같았다.
무심결에 스친 나무 뿌리에 흠칫 놀랐다.
여인의 벗은 몸이 보였다.
나무뿌리일 뿐인데 여인의 몸을 본 내 안의 나는
어쩔 수 없이 번뇌 덩어리일 뿐.
그러고 보니 옆에 떨어진 나뭇잎도
몸을 가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번뇌 망상이 이어진다.
육신을 입은 것이 슬펐다.
길에는 유혹도 많다.
낙엽 위로 살며시 바람이 지나갔다.
인생은 한 여름의 꿈 같다는 생각.
바위에 내려 앉은 그림자도, 나뭇잎도
머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말 것들.
길을 가다보면 곧잘 허무와도 조우하게 된다.
그래도 또 길을 간다.
여기서 길은 둘로 나뉜다.
어느 쪽으로 갈까?
하나를 택하면 하나는 놓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욕심의 뿌리가 갈등을 일으킨다.
어느 하나를 버리고 싶지 않은-------
꼭 욕심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쉬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지못한 길(The Road not Taken)에 대한.
길을 가면서 포기하는 법도 배운다.
길은 스승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길 떠나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가을처럼 익기 위해선 말이다.
그리고 강물처럼 깊어지기 위해서.
나이테.
나이테를 만들어가던 시간들,
그리고 나이테가 허물어져가는 시간들.
시간의 적분과 미분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어딘가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
그 어딘 가의 한 점.
고뇌하며 살아가든,
무심하게 살아가든
시간은 이 순간도 나이테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그 둥글고 질긴 윤회의 나이테를-----
허무와 만나고 나서
선재동자처럼
또 떠난다.
화엄의 세계는 어디 있는 것일까
두 장의 낙엽을 보고
내 속에서 일었던 분별심.
'쟤는 색깔이 고운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백팔배,아니 그 열 배, 백 배로도
씻을 수 없는 나의 업보.
해가 잘 드는 오솔길.
바람이 불며 들려오는
풀들의 살랑거림이
귀에 간지럽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떠났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다.
숲에는 살아 있는 것과 소멸하는 것,
그리고 소멸한 것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도 많이 기울었다.
머지 않아 이 숲에도
머루알 같은 어둠이 익어갈 것이다.
바위 틈에 피어난 꽃.
힘들여 싹을 틔우고
꽃까지 피웠다.
생존의 고단함은 어디 두고
보여주는 희디 흰 얼굴.
저 꽃이 화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숲이 끝나는 곳에 거의 다 왔다.
화엄의 언저리도 미치지 못한 채
나의 여정은 끝이 났다.
난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무심하게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고단한 몸을 쉬기 위해 자리에 누울 것이고
꿈을 꿀 것이다.
꿈에서 또다시 난 길을 떠날 것이다.
마치도 '노인과 바다'에서의
산티아고 노인이 사자꿈을 꾸듯이
길떠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화엄의 세계엔 영 도달할 수 없어도
내 허무한 몸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