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 온 뒤로는
성당에 가지 않았다.
온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교회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느라
주일 미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주부터는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례를 해야 한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교회에서 부과하는 의무 조항에 흔들리지 않고
신을 향한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나?
얼치기 신앙인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 주일 미사에 다녀왔음에도
미사에 가지 않던 주일과 별반 차이를 모르겠다.
한 때는 내가 제법 열심한 가톨릭 신자라는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이젠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부끄럽고 불경스럽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오늘도 지난 주일 처럼 아침 8 시 미사에 다녀왔다.
오늘 복음 말씀 중에 하늘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Mustard Seed가 한국말로 생각이 나지 않아
나의 뇌가 고생을 좀 했다.
겨자라는 말 대신 치자라는 말이 떠올라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겨자와 치자는 영 다른 거라고 했다.
나중에 겨자가 떠오르긴 했어도
그동안 나의 뇌가 엉킨 타래를 풀어내느라 애를 좀 쓴 것 같다.
부제님이 강론을 하셨는데
강론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나만의 묵상에 빠졌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키가 커서 자라면 새들이 깃들일 정도가 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도 그와 같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뜬금없이 최근에 시작한 나의 근육 운동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기저기서
근육들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시간과 나의 애씀을 통해 자라나는 근육처럼
내 안에 떨어진 말씀의 겨자씨도
싹을 틔우고 성장을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내 육신의 근육 성장을 위해서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내 영혼의 성장은 언젠가 멈추고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모든 것을 벗고 알몸으로
나에게 주어진 영혼의 근육을 키우고 성장시켜
그 결과를 보여드려야 할 텐데
내 안에 심어진 겨자씨는 싹이나 틔운 것일까?
내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한 오늘 아침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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