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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혼자 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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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

하다 못해 동네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축구경기를 하면

넋을 놓고 구경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축구를 하지 못한 것이

아홉 달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축구 경기를 보는 일뿐이다.

 

최근에 본 경기 중 아주 통쾌했던 기억으로 남은 것이 있었으니

영국의 프레미어 리그의 토트넘과 아스날의 경기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나 통쾌하고 짜릿했던지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열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손흥민 선수가 케인의 패스를 받아

아스날 지역의 왼쪽 골 에어리어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문 안으로 들어갈 때의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골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런데 모두가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와

또 그에게 적절한 패스를 한 케인에게

시선과 찬사가 쏟아질 때

나의 눈을 끈 선수가 있었으니

토트넘 팀의 수비수 레길론이다.

 

수비수로서 자기 진영의 후방에 있던 레길론은

케인이 손흥민 선수에게 패스를 하는 순간

전 속력으로 긴 거리를 달려서

손흥민 선수가 슛을 날리기 전에 바로 왼쪽으로 침투를 했다.

순간 아스널의 수비수는 레길론 선수에게 신겨을 쓰느라 주춤거렸고

덕분에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손흥민 선수는

지체하지 않고 슛을 날릴 수 있었다.

 

골과 또 그 골의 도움을 한 손흥민과 케인에 대한 찬양은

아주 당연한 것이긴 하나

나는 전 속력으로 질주해서 손흥임 선수의 곁에 있어준

레길론 선수에게도 마음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같이 동네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어쩌다 혼자 공을 잡고 상대편 진영으로

드리블을 할 때 우리 편 진영의 후방에서

'혼자 해!'라는 다소 애매한 고함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나이가 많음에도 이런 경우 예외 없이 반말이다.)

 

그것은 나의 실력을 믿으니

알아서 하라는 칭찬이나 신뢰의 말인 것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나 힘드니 거기까지 따라갈 여유가 없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아스날 전에서 손흥민 선수가 넣은 멋진 골에

말없이 곁에 와준 레길론 선수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넉넉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살다 보면 내가 잘해서 혼자 골을 넣은 것 같지만

나에게 패스를 해준 사람과 함께

보이진 않아도 말없이 곁에 있어준 사람들 때문에

그런 영광을 누린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었을까.

 

앞으로 언제 다시 축구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뒤에서 '혼자 해!'라고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 해 드리블을 하는 선수를 따라

나도 땀을 흘리며 힘차게 뛰어 그의 곁에 함께 할 것이다.

 

삶이라고 해서 축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

나만 골을 넣으라는 법은 없다.

나이가 먹어가면서골을 넣기보다는 골을 넣는 사람 옆에

말없이 다가가서 함께 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축구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며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