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출장 서비스
아내는 오늘 아침 나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날이 더워질 예정이니
창 밖에 빨래처럼 널어 둔 다육이 화분들을
실내로 옮겨 놓으라는 분부를 남기고 훌쩍 떠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다육이의 화분은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평소엔 눈으로만 그 아이들(?)과 만날 뿐
손으로 만지작 거릴 사이가 아님에도
내 손으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한 것은
오늘 아침부터 시작되는 아내의 출장 서비스 덕이다.
출장 서비스라 함은
7 월 한 달 월요일마다 손주들을 봐달라는 큰 딸의 요청을 받아
딸네 집에까지 가서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일을 일컫는다.
보통 데이 케어 쎈터 같은 곳에서는
부모들이 그 곳까지 가서 아이들을 맡기고
일이 끝나면 직접 집에 데려오는데
아내의 출장 서비스로 말미암아
그런 수고로움에서도 면제가 되니
딸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셈이다.
큰 딸은 7월 한 달 썸머 스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고
따라서 더운 날씨에 고생은 되어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큰 딸은 일주일에 나흘인가를 출근하는데
그 중 월요일 아이들 보는 일에 덜컥 아내가 당첨된 것이다.
일단 당첨이라는 단어는 뭔가 횡재를 한 느낌이 들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 않은 것은 가고 오는 길의 험난함 때문이다.
아침에 가는 길은 비교적 한가해도 한 시간은 꼬박 걸린다.
아내의 출장가는 길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라고 해도
집에 돌아 오는 길은
뉴욕 시내의 악명 높은 교통 지옥을 통과해야 하니
보통 짜증나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 온 아내의 무용담(?)을 듣는 내가
다 짜증이나고 피곤해질 정도이다.
아내의 출장 서비스 때문에 물론 아내가 힘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 피해가 나에게까지 미친다.
당연히 저녁 한 끼가 부실해진다.
나는 아침 식사로 아들이 만들어 주는 스무디 한 잔,
점심은 샐러드를 먹는다.
그러니 가장 인간다워야 할 저녁 식사 한끼가 부실해진다는 것은
하루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날아가 버린다는 말과 같다.
게다가 오늘 아침처럼 다육이를 집 안으로 들여 놓는
과외활동까지 해야 하니
아내의 출장 서비스는 우리 생활에 제법 큰 파장을 몰고 온다.
그러나 이런 파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 딸은 당당하게 아내의 출장 서비스를 요구 내지는 부탁을 한다.
출장 서비스에는 경비도 제법 든다.
홀란드 터널 통과료 약 15 달러.
그리고 휘발유값,
게다가 아이들의 아이스 크림 같은 간식비까지 지불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러니 아내의 노동과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얼추 셈을 해도
하루 150-200 달러는 받아야 함에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슨 큰 비밀이나 되는 것처럼
아내나 딸의 입은 의도적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굳게 닫혀 있다.
물론 꿩 먹고 알도 먹는 딸의 지갑도 열리는 법은 없다.
불평등 조약임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부지불식 간에 볼멘 소리라도 입에서 나올까 노심초사하면서
주인의 명을 받은 노예처럼
아내는 오늘도 묵묵히 출장서비스를 하러 떠났다.
딸은 손주들을 몰모로 삼고
틈이 날 때마다 이런 노예계약을 체결하자고 하는 것 같다.
자식이 뭔지,
그리고 손주가 뭔지
불평등 조약에 아무런 계산도 없이 척척 싸인을 해야 하는
삶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삶은 환갑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불가사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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