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담아온 여행
지난 해, 노동절을 낀 연휴에 아내와 메인 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다녀왔습니다.
메인 주는 미 동부의 제일 북 쪽에 있으며, 카나다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8-9시간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이라 평소엔 마음만 두었지 감히 그곳까지의 여행을 감히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연휴는 황금보다도 값진 짜투리 시간을 허락해 주어서 먼 길을 떠날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거의 무작정, 무계획으로 ‘묻지마(?) 여행을 다녀온 것입니다.
묵을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난 여행이라, 차 안에서 하룻밤 지새울 요량으로 이불과 슬리핑 백만 싣고 무조건 출발했습니다.
어차피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다녀오려고 했기에, 바다를 끼고 가는 길 중간 중간에 보이는 해변 마을의 이름을 보고,
그 중 마음에 끌리는 이름 하나를 골라 그 곳에서 이미 가을 기운에 서늘해진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여유도 부려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피곤해서인지 졸음이 쏟아지면서 그만 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낯설고 어두운 밤길에 잠시 방향을 잃고 길을 물으러 인적 끊긴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편의점을 겸한 그 곳에서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점원 청년은
낯선 이방인에게 지도까지 펼쳐가며 친절하게 우리의 목적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가르쳐준 대로 다시 길을 찾아 겨우 도착한 목적지에 이르니 밤 열 두 시가 훌쩍 지나고 새벽 한 시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열 한 시간에 가까운 긴 여정에 지친 우리는 차 뒷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눕히고 마련한 보금자리에 고단한 몸을 눕혔습니다.
하룻밤의 잠자리로는 그런대로 십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쾌적한 잠자리라고 해도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늘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기 마련입니다.
25년의 이민생활로 굳어진 제 몸의 생체시계는 그날 아침에도 정확했습니다.
눈을 뜨고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평소 같으면 집을 나설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바닷가에 와서 해 뜨는 광경을 놓치면 안 되는 일이기에 눈곱도 떼지 않고 부두로 나갔습니다.
수평선 멀리서부터 발그스럼하게 붉어오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고단한 여행의 목적은 다 이룬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보트 선착장에서 낚시질을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잘 들이대지 못하는 제 주변머리 없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그 낚시꾼은 손짓으로 절 불렀습니다.
얼씨구나 하고 내려가 보니 그의 낚시대엔 생선이 한 번에 세 마리나 달려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주며 고기들이 흰 색을 좋아해서 미끼가 없어도 이렇게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이것 저것 그 고장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고마움을 표하고 다른 곳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 낚시꾼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우릴 찾아왔습니다.
혹시 취사를 할 수 있으면 자기가 잡은 생선을 몇 마리 나누어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순간 화씨 50도가 안 되는 제법 서늘했던 날씨임에도 가슴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따사로운 기운으로 온 몸이 푸근해짐을 느꼈습니다.
비록 생선을 나누어 받진 않았어도 그날 아침은 맛있는 생선보다도 귀한 것으로 식사 대접 받은 것처럼 포만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즐거움을 선물해 줍니다.
어느 곳이든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새롭고 신기한 경치를 경험하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여행의 즐거움과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그마한 친절이, 한 마디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라고 말이지요.
친절함이 있는 곳이 바로 천당입니다.
아름다운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자연과 함께 여행 길에서 만난 두 사람의 친절함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천당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해 뜨는 광경을 찍은 멋진 사진은 카메라에 담고, 두 사람의 친절 한 마음은 가슴에 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비록 고단하고 어두웠지만, 가슴 속을 그득 채운 행복한 느낌은 가을 하늘의 별처럼 그렇게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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