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과다루페 성당에서 찍은 사진
인디오 할머니가울면서 간절히 기도 하는 모습
용서와 기도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 곳 뉴욕 인근의 한인 동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과일 야채 가게나 델리 그로서리 가게, 생선가게와 잡화가게, 또는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고단한 이민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뉴욕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처음 6년 동안은 야채가게에서
주일의 의무도 지키지 못하면서 허리 라픈 이민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야채가게의 일이 제법 손에 익고 미국 생활에도 길이 들 무렵 내게 새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내가 일하던 야채가게 바로 옆에 있던 세탁소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그 세탁소는 문을 닫게 되었고,
마침 몇 가게 옆 건물에 빈 가게터가 나와서 얼떨결에 팔자에도 없는 세탁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탁소는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주요 휴일은 꼬박꼬박 쉴 수 있기에 주일도 없이 일하던 내게는 새 일터로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무식하다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무작정 경험도 없이 시작한 세탁소는 내 기대와는 영 딴 판이었습니다.
전기며, 기계같은 분야엔 전혀 상식도 소질도 없는 내게
세탁기계와 그에 딸린 보일러며 프레스 머신 등등의 장비는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기계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면서 이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일부러 나를 골탕먹이려고 고장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래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기술자를 불러 수리를 요청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해결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정말 힘든 것은 작정하고 괴롭히려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손님 중에 가학증을 가졌다고 밖엔 판단할 수 없는 한 여자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 손님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내 억장을 긁어놓기에 그녀가 눈에 들어오면,
나도 본능적으로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꼿꼿이 가시를 곤두세우는 고슴도치처럼 그렇게 긴장을 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발 다른 세탁소로 가라고 해도 무슨 이유인지 우리 세탁소만을 고집하는 그녀는 손님이기보다는 '웬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그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는 늘 가시가 돋혀 있었습니다.
문제의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출현과 함께 평화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씩씩거리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태도로 세탁소 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자기 코트를 찾아내라는 겁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로, ‘언제 그 코트를 맡겼으며, 티켓은 가지고 왔느냐?’고 정중하게 물었지요.
그 여자 손님은 티켓은 지갑채 잃어버렸고 자기 옷장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없으니 자기 코트가 분명히 이 세탁소에 있을 거라고 떼를 쓰는 겁니다.
컴퓨터의 기록을 살펴보니 한 달쯤 전에 찾아간 걸로 되어 있는데,
그 손님은 막무가내로 찾아간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면 시쳇말로 뚜껑이 열리는 법입니다.
더 이상 품위고 교양이고 따질 겨를도 없이 나도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나는 싸움을, 그것도 영어로 그렇게 싸움을 그렇게 잘하는지, 싸우면서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결국 그 여자 손님은 카운터 위에 있던 물건을 모조리 집어던지며 한 바탕 난리를 쳤고, 결국 경찰을 부르면서 일단 긴급사태는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날 그 여자 손님과의 일 로 해서 하루종일 땀에 절은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기분이 찝집했습니다.
퇴근길에도 여전히 그 구정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은 진한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쌓여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그 때 마음 속에서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고 하느님께서도 내 편을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좀더 인내심을 갖고 그 손님을 대하지 못하고,
평소에 갖고 있던 불편했던 감정을 터뜨려 그 손님의 맘을 상해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죄스런 감정이 물안개처럼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날 은 집에 돌아와서 마음을 모아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용기가 없어서 그러니 제가 그 자매에게 먼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손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말주변이 없는 나이지만 용기를 내어서 주님께서 대신 말씀해주실 것을 믿고 말이지요.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그리고 그런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손님은 오히려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며
자기가 찾던 그 코트는 남편이 한 달쯤 전에 찾아다가 남편의 옷장에 넣어두고 깜빡했다며 오히려 내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처럼 등 돌린 사람이 서로 만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용서와 화해를 위한 기도는 그런 사람들끼리도 바로 고개를 돌려 마주볼 수 있는 용기와, 서로 껴 안을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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