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축구를 하는데 잔디가 얼어서 공이 빠른 속도로 굴렀다.
공에 가속도가 붙은 까닭에
아무리 빨리 뛰어도
공의 속도를 따라기가 힘이 들었다.
오후엔 Tall man Mountain State Park로 산책을 나갔다.
갈대 밭 옆으로 오솔길이 있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얼마 전 지나간 폭설로 많은 갈대가
쓰러져 있었다.
바람에 스치는 바람에
서 있는 갈대들은 마른 기침을 했다.
어디에서도 봄의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참으로 더디다.
긴긴 겨울을 지내온 인내심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해서
갈대가 누웠다.
저 사이에서
삐죽삐죽 푸른 순이 돋을 것이다.
언제나 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왔다.
그럼에도 늘 조바심이 난다.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갈대보다 약하다.
멀리 Tapan Zee Bridge
넓은 갈대 밭 사이로
물이 흐른다.
빼곡한 갈대 밭 사이로
길이 생겼다.
멈춰서 우묵한 곳을 채우기도 하고
말 없이 흐르기도 한다.
물은.
지난 겨울,
바람과 폭설에도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들.
물기 하나 없는 종이 같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죽어서도
대지로 돌아가지 못 하고
공중에 매달린 혼령 같은 이파리에 바람이 스친다.
온통 죽어 있는 숲 속에
살아 있는 건
바람 소리 뿐.
뜬금 없이 노자가 생각났다.
'상선 약수'
“최고의 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최고의 선에 있는 사람은 머무는 곳으로는 땅을 최상으로 여기고,
마음가짐은 고요한 연못을 최상으로 여기며,
선한 사람과 더불어 하며,
말에서는 믿음을 최상으로 여기고,
바르게 함에 있어서는 다스리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며,
일에서는 능력을 최상으로 여기고,
행동에서는 시의적절함을 최상으로 여긴다.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따라서 허물이 없게 된다”-제8장-
나무 비탈에 서다.
누군가가 돌 무더기로 쓰러지는 나무를 지탱해 주었다.
그 돌무덤 사이를 뚫고 나무 가지 하나가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다.
지난 겨울 동안
숲 속엔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무들이
뿌리채 뽑혔다.
그래도 숲은 여전히 그 숲이다.
다시 가던 길을 돌아 나왔다.
우리가 걷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새 소리 몇 음절과
바람이 나뭇잎과 갈대를 스칠 때 나던
마른 기침 소리를
만났을 뿐이다.
Piermont 강 마을에 묶여 있는 보트는 머지 않아 강으로 나갈 것이다.
숲 속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봄이 올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을 끄트머리 다리 옆에 있는
놀이터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아주 명랑했다.
숲 속에는 봄이 오지 않았어도
아이들 목소리에는 이미 봄이 성큼 와 있었다.
아이들 속엔 봄을 감지하는 인자가 있는 것인지.
나에게도 애초에 그런 인자가 있었음에도
나이가 먹으며
인자에 때가 끼어 봄이 왔음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소리가 햇살에 부서져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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