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아들과의 하이킹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407
오늘은 셋째 딸 아이의 콘서트가 있는 날,
워싱톤에 있는 큰 아들이 집에 왔다.
금요일 밤 늦게 맨하탄에 도착해서
친구 집에서 자고 토요일에 집으로 들어왔다.
큰 아들은 워싱톤에 있는
Georgetown Law에서
무사히(?),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한 학년을 마쳤다.
그리고 방학 동안 미 상원의 법사위(Senate Judiciary Committee)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토요일 저녁 누나의 world premiere 공연을 보고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아들은
일요일 아침 엄마와 함께 하이킹을 가고 싶다고 했단다.
아내는 슬쩍 나에게 그 이야기를 흘렸다.
축구를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나도 하이킹을 가면 어떻겠냐는
다분히 의도된 '떠보기' 전법이었다.
나는 순순히 축구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우리 집 '최고존엄'에게 높은 포인트를 딸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랜만에 아들과도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꿩 먹고 알 먹고(꿩 맛이 어떤지, 그 알 맛은 또 어떤지 모르긴 해도),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나는 내년이면 환갑,
큰 아들은 내년 여름 방학부터는 돈을 받는 인턴 생활을
일류 로펌에서 할 계획이다.
(이 말은 빼려고 했는데 가끔 자식 자랑이 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바람에 손가락질 당할 각오를 하고 이리 썼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 맨하탄에 있는 어느 로펌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워싱톤으로 떠날 것이다.
결국 아들과의 하이킹의 기회는
앞으로는 점점 적어질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이 번이 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하이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Carpe Diem'
이젠 이렇게 아이들과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한 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다섯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나이 든 것보다
더 많이 커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요일 아침 하이킹을 떠났다.
목적지는 어디라도 좋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허드슨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끼고 절벽이 이어지는데
절벽 위와 절벽, 그리고 강 옆으로
거미줄처럼 트레킹 코스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날 때
하나씩 내 품 에서 놓았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대학에 간 아이들은
이미 둥지를 벗어난 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학 때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마치 귀한 손님이었고 또 선물이었다.
학교로 돌아갈 때면
서운한 느낌은 4할,
손님 치레가 끝난 것 같아 속이 후련한 느낌은 6할 가량 되곤 했다.
오면 반갑고
떠나면 고마운 존재가 아이들이다.
그런 손님 같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자기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면서
아이들과의 심정적인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
늘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점점 더 귀한 손님이 되어 가는 아이들------
한 번 사는 삶, 후회를 적게 남겨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바로 지금이다.
내일은 오늘이 아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9W 갓길에 차를 파킹하고
팰리사이드 파크웨이를 지나는
구름다리 위를 건너서 강 쪽으로 건너 갔다.
돌로 된 계단엔 풀들이 사이 사이 자라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만 은밀히 다니는 길.
담쟁이 잎사귀들이 기를 쓰고 벽을 오르고 있다.
어느 녀석은 벌써 빨갛게 볼이 달아 올랐다.
살아 있는 존재는 다 다르다.
다리 밑으로는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닌다.
공간의 거리
긴장
구름다리를 건너니 바로 숲으로 이어진다.
한 겨울을 빼고는 숲 속은 어둡다.
숲 속에도 길은 있다.
사통 팔달이다.
숲 밖에서 보면 길이 없는 것 같다.
'길은 아무데도 없고
길은 결국 아무데나 있다'
이런 돌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숲 속에서 우리 모두 푸른 물이 들었다.
아내는 아들 앞에서 자기의 기분을 표현했다.
아내가 서 있는 곳은 천길 낭떠러지다.
백척간두보다 더 높은 곳이다.
"왜 저러실까?"
"마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길은 이어지고---
숲 속엔 별별 꽃들이 참 많다.
내가 꽃을 보고 아내에게 고했더니 사진을 찍는다.
몇 해 전 이 곳에서 사진을 찍다
포이즌 아이비 독이 올라 고생을 했다.
아내는 용감하다.
절벽 아래 허드슨 강이 흐른다.
물빛이 다 다르다.
깊은 곳은 하늘 빛이고
육지 쪽은 흙 빛이 비친다.
내 마음 속에도 강이 흐른다면
어떤 빛을 내며 흐르고 있을까.
가는 길 청사초롱처럼
길을 밝히는 꽃.
전망 좋은 곳.
절벽에는 담을 쌓아 놓았다.
더 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담 너머,그 위험한 곳에 이런 식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꽃이 피면 장관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내는 그 광경을 못 본 것을 아쉬워 한다.
내년을 기약했지만,
글쎄?
빛과 물의 흐름이 만들어 낸 무늬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인 것 같아도
절대로 무심하지 않다.
햇살 한 조각
윙크를 하는 것 같다.
햇살의 윙크는 눈이 부시다.
답례로 나도 찡끗.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고
전망대 망원경렌즈에 비친 아들 모습
이런 절벽이 강을 따라 이어진다.
주차장 한 편에 있는 카페
마님은 그 사이 찍은 작품(?)을 세상에 전파하느라
삼매경에 빠지셨다.
한 유태인 남자가
망또 같은 걸 걸치고 딸과 함께 와서
기도를 하고 있다.
누군가 죽은 나무를 이용해 조각을 했다.
죽은 나무 둥지에서 손이 솟아 오른 형상이다.
손과 손 사이의 거리,
아마 이 손의 주인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 생각을 했다.
거리를 두고,
거리를 유지 하면서 한 곳을 향하는----
쌩떽쥐베리가 했던 말이 이 나이 먹어서야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이 앞장 서서 길을 열었다.
전에는 내가 앞장을 섰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이 자연스레 앞에 섰다.
그런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 걸음보다 훨씬 빨라진 아이들의 걸음을 인정해야 하는---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저 만치 앞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간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먼 훗날 가끔씩 뒤에 있는 우리를 돌아보며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웃음 지어준다면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 세상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그 사이 활짝 피어난 원추리가 햇살 아래
밝게 웃고 있었다.
(사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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