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일기
어제 토요일 집에 들어오는 길은
저녁 여덟 시가 넘었는데도
서쪽 하늘이 지는 태양의 빛이 반사되어
구름 빛이 황홀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동쪽 하늘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데크에 나가 보니
하늘이 불타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봄 닐이 펼쳐질 것임을
넌지시 일러주는 것 같았다.
추구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른 Pond side Park.
아침이 막 열리고 있었다.
동네 어귀의 저수지에도
황홀한 아침이 막 열리고 있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막 바뀌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
축구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는 성당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한
브런치 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젯 밤 부활 밤 미사를 다녀와서
아내가 만든 부활 달걀도
식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빈 껍질만 있는 달걀도 보인다.
빈 무덤이 부활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듯
달걀 껍질은 병아리의 부화를 상징하는 것일 터,
그런데 병아리는 어디 갔을까.
식사를 하는 도중
예고도 없이 딸 셋이 들이 닥쳤다.
둘째 지영이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서라고 했다.
즐거운 식사 후에
아내와 나는 하이킹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우리집 뜰의 나무에는 초록색
꽃이 피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엔
흰 비행기 구름 두 줄.
지난 주까지 보이지 않던
민들레 꽃이 잔디 밭 여기 저기 피어 났다.
벚곷 나무에도 작은 꽃봉오리가 맺혔다.
옆 집의 우산처럼 생긴 흰 벚꽃은
벌써 피었다.
드디어 출발
목적지는 알파인 트레킹 코스이다.
허드슨 강을 끼고 걷다가
절벽을 기어 올라
갔던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열심히 걸으면 두 시간 반,
그런데 오늘은 세 세간 반이나 걸렸다.
길 초입엔 봄이 막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듯
나뭇가지에 초록 꽃이 돋았다.
길 옆엔 이 보라색 꽃이 피었다.
온 산을 거의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벌들도 여럿이 꽃 사이를
바쁘게 날아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었고
간혹 나비도 눈에 띄었다.
그 모양이 마치 별처럼 생겼다.
아내에게 꽃이름을 물었다.
'별꽃'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아내의 입에서 별꽃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 순간부터
그 꽃은 별꽃이 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지난 가을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여태 남아 박제가 된 나뭇잎.
저 나뭇잎에 저장되어 있을 시간.
비, 바람, 눈. 서리,
그리고 강물 소리.
이끼 낀 계곡으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
그 물소리가 손녀 Sadie 목소리처럼
청아하고 명랑했다.
한적한 숲길.
나무들 비탈에 서다.
비탈에 빼곡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는 나무들.
간간히 눈에 띄는 풀꽃들.
난 '야생화'라는 말보다 풀꽃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야생이라는 말에 담긴 억셈의 의미를
이 여린 꽃들에게 지운다는 건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강 옆의 나무 그림자가
강물에 잠겼다.
아직 나뭇잎이 나오질 않아서
벼랑의 모습이 보인다.
벼랑 꼭대기엔 늘 매 몇 마리가
천천히 맴을 돈다.
힘들여 벼랑을 오르니
노란 수선화가 우릴 반겨 주었다.
벼랑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 왔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강은
까마득한 곳에 있었다.
절벽 꼭대기와 강 사이의 비탈.
그 곳의 숲에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초록의 작은 꽃들이
인상파 화가의 점묘처럼
내 눈 앞에 널려 있었다.
봄,
봄의 빛에 취했다.
나무에 새긴 사랑.
이미 새겼으니
그 사랑, 그 마음 나무처럼 자랐으면-----
바위 틈바구니에서도
풀이 자란다.
이끼를 잔뜩 인 아름드리 나무.
그 그늘에 핀 키 작은 식물.
하나는 소멸을 향해서
하나는 성장을 향해서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
소멸과 성장이라는 화두는
이 숲길을 걷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성장과 소멸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음이 견성이고 해탈이다.
그러나 아무러면 어떤가,
경치에 취하고
풀잎의 빛깔에 취해 보낸
한 나절의 피로감을 풀기 위해
눈을 감고 달디 단 낮잠 속으로 푹 빠지면
그것이 견성이고 해탈인 것을.
낮잠을 깨어 눈을 뜨니
길기만 할 것 같은
아름다운 봄 날의 해가
어느덧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