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이
봄은 살금살금 잔 걸음으로 오는 척 하다가
방심하고 잠시 한 눈을 파는 동안
어느새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출발선에 있는 아이들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순진하게 또박또박 외치고
눈을 뜨면
아이들은 어느새 내 눈 앞에
와 있던 것 같이
갑작스레,
봄이 내 눈 앞에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 주일을 부르클린에서 지내고
뉴저지 집으로 가는 길이 그랬습니다.
그 전 주엔 파란 싹만 보이던 수선화가
희고 노란 꽃을 피워내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환호를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그리고 내가 모르는 꽃들도
꽃망울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봄은 그래서 귀 기울여 들으면
꽃망울 터지는 소리 때문에
무척이나 시끄러운 계절입니다.
봄은 아무 것도 없었던
마술사의 손에 갑자기 나타난 꽃처럼
그렇게 갑작스레,
그리고 놀랍게 왔습니다.
일요일 아침 데크에 나가 보니
다육이가 꽃을 피웠습니다.
작고 앙증맞은-------
봄은 작고 앙증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와
Tallman Park로 하이킹을 떠났습니다.
눈이 녹아 흐르는
개울물 위에 빨간 나무꽃이 떨어졌습니다.
얼마 후면 나무꽃이 다 떨어지고
그 자리에 푸른 잎이 돋을 겁니다.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잎.
꽃이 소멸해야
비로소 새살 돋듯이
잎이 돋아나는 자연의 신비가
우리가 곧 맞이할 부활의 신비와
맞불리는 계절,
그렇지요, 우린 바로 그 봄을 맞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자연은 신비입니다.
처음으로 걸어보는 산책길.
자전거와 애완동물도
함께 하는 길입니다.
만나서 눈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길.
길이 곧 우리네 삶입니다.
나무의 초록빛 꽃이
흐린 날을 조금은 밝혀주는 것 같습니다.
숲은 아직도 겨울입니다.
작은 연못 가장자리의
나무에는 봄이 피었습니다.
아내가 숲길을 걸어갑니다.
함머니가 되어서
처음으로 맞는 봄.
"아직도 가슴이 뛸까?"
아내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공연히 내 가슴만 아려옵니다.
지난 가을 태어난 손녀 Sadie와 아내의 거리.
성장과 소멸의 거리입니다.
숲 사잇길을 가다가
옆으로 새었더니
거기에 아주 커다란 집들이 여려 채 있었습니다.
이런 집으로 가는 길은
개인이 소유한 까닭에 차로는 갈 수 없습니다.
벼랑 끝에 누군가가
작은 의자 몇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자신들만의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불을 땐 흔적도 있습니다.
벼랑 아래, 그리고 멀리
갈대밭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덩쿨나무의 줄기가 어떤 나무의
줄기를 휘감았습니다.
뱀처럼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혹이 그렇습니다.
아
무심히 자신의 발등에
몸을 얹은 덩쿨 줄기를 무심하게 지나쳤겠지요.
결국
덩쿨과 나무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유혹이라는 것.
뿌리 뽑혀 넘어진 나무.
거기에 버섯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누군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의 집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터전.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자신의 소멸로
다른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운전 면허증 뒤에 Organ Doner에 Yes라고 표시하는 일.
필요한 누군가에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나의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나무들에 둘러 싸여
어둔 연못에 소금쟁이 맴을 돕니다..
파문이 생깁니다.
고요한 연못에 물무늬 번지는 소리.
ㅗ
이 연못에도
나무꽃 몇 줌 떨어졌습니다.
-꽃이 물에 떨어질 때
어떤 소리가 날까?-
-아플까?-
고요한 연못가에 있는
내 생각만 요란합니다.
멀리 Tapan Zee다리가 보이고----
날이 흐려 시계가 좋지 않습니다.
아내가 앉은 바위 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입니다.
너른 갈대밭이 보이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갈대밭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데
이곳은 제법 시야가 트였습니다.
그런데 빛이 좋질 않습니다.
언제고 다시 찾을 겁니다.
개울물이 돌돌돌 흐릅니다.
돌 사이로 흘러서인지
돌돌돌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개울 가에 어떤 식물인지
막 싹이 돋아 벌어지려 합니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돕니다.
언제고 팍 터질 것 같습니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나무는 딱다구리가 여러 군데
구멍을 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숲길을 걷는 동안
다른 새 소리도 들리지만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제일 요란합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나무를 쪼아댑니다.
딱따구리는 자기 소리 라는 걸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딱따구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보다도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기 고유의 것은 기억되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기억되는
딱따구리라라는 존재가
조금 슬퍼졌습니다.
자신을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의 슬픔.
뿌리 뽑힌 나무가 썩고 또 썩어서
조각 작품이 되었습니다.
지난 가을 떨어진 떡갈 나뭇잎 사이로
파릇파릇 싹이 돋고
작고 앙증맞은 꽃이 피어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나무 뿌리 한 켠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났습니다.
어디 굵고 잘 생긴 줄기만 살라는 법이 있나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아도 저 또한
맞아요,
귀한 생명입니다.
ㅗ
숲길로 난 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 중 하나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메신저 같습니다.
저들은 아마도 겨울부터
달려왔을 것 같습니다.
이끼 덮인 그늘진 땅 한 모퉁이에 돋은
풀 한 포기가 눈물 겹습니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고 보니
푸른 풀 한 포기가 가슴 절절히
소중하다는 걸 알겠습니다.
살아 있음이 단지 기쁜 것이 아니라
감격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핀 꽃이 반깁니다.
'Carpe Diem'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봄날도 곧 가버립니다.
이 봄날을 감격스럽게 보내지 못하면
슬그머니 왔던 것처럼
봄은 슬그머니 떠날 것입니다.
사랑하고 감격하기 가장 좋은 지금이
바로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