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여. 그대가 부처로소이다
앞뜰에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다 꽃잎이 멀쩡하게
예쁘게 피었는데
유독 이 꽃만 꽃잎이 듬성듬성 없기도 하고
크고 깊은 상처 있는 꽃잎을 지니고 산다.
바람에 찢겼을까.
아니면 벌레가 먹었을까?
누가 보아도
이 꽃은 다른 꽃보다 못 생겼다.
그런데 나비 한 마리가 이 꽃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나비의 눈이 잘못되었나?
하필이면 다른 예쁜 꽃 놓아두고
이 꽃에 앉았을까.
나비는 그런 걸 구별할 능력이 없는가 보다.
나비에겐 꽃은 다 같은 꽃인 것을.
많고 많은 꽃을 두고
이 꽃에 앉은 걸 보면--------
어리석고 저능한 나비
가만히 눈감고 생각해 보니
이리 찢기고
상처가 난 꽃도
꽃은 꽃인 것을.
나비 눈보다
분별심을 일으키는 내 눈이
낫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어리석다.
금새 자신이 어리석다는 분별심을 일으키는
나를 본다.
분별이 사라지고 없는,
아니 분별이 무언지도 모르고
못 생긴 꽃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나비,
그대는 부처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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