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

애당초 이번 한국여행의 목적은 전혀 없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공짜로 한국을 다녀올 수 있는 항공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예정되어 있었던,

제법 큰돈을 써야 하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 대신

항공료를 (거의)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행을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인 오늘

고등학교 동기 들 몇이 강서 둘레길을 걷는다고 해서

나도 끼어 서 걷기로 했다.

친구 다섯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둘레길을 걷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내가 꼽사리 끼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영일이와 동희는 연전에 청계산 산행을 같이 해서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정민이와 창원이는 다른 동기들과 캘리포니아 여행을 할 때

내가 합류해서 일주일 동안 동고동락을 했다.

특별히 정민이와 청원이, 그리고 상무는

작년 우리가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만나서

회포를 푼 적이 있다.

다섯 친구 중 둘은 작년에 교수직에서 정년퇴직을 했고

또 다른 친구 둘은 몇 해 전에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했으며

또 한 친구는 꽤 오래전에 해군 장교로 전역을 했다.

나도 작년에 은퇴를 해서

결과적으로 나를 포함해서 여섯 백수의 둘레길 걷기가 성사되었다.

날이 제법 쌀쌀했다.

집결지인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역 3번 출구에서

다섯 친구들과 만났다.

한 친구는 내게 핫팩을 내밀었다.

햇팩은 차가운 내 손에 온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 핫팩의 온기를 통해서 친구의 마음이

내 손을 통해 내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핫팩은 손뿐 아니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친구들은 각자 함께 나누어 먹을 간식거리를 가져왔다.

사과와 귤, 같은 과일과 고구마, 에너지 바, 박카스 젤리,

커피와 대추차 등등이 몇 차례 휴식 시간에 나누어 먹은 간식 리스트다.

나는 친구들이 나누어주는 간식을 널름널름 받아먹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는 모든 암묵적인 준비물에서 열외 되었다.

사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로 빚을 졌다.

그래서 잠시 쉬는 시간에 오늘의 점심은

내가 대접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친구들에게 한 끼를 기쁘게 대접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 제안에 거부감을 드러내다가

마침내 내 뜻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걷는 동안, 그리고 쉬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가면서 겼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아주 사소한 삶의 이야기가 주제였다.

아니, 주제라는 말을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그런 이야기였다.

삶이 꼭 고상할 필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범함, 색깔 없는 삶의 모습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맞는 삶의 여백,

그 자유에 대해 우리는 만장일치로 찬양을 했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황금기라는데 동의를 했다.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우리는 주꾸미 볶음 정식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식사비 계산을 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믿었는데

한 친구가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고 그 결정을 파기해 버렸다.

식비를 그가 계산을 해치웠다.

모든 것은 다 내가 방심한 탓이었다.

경계를 늦추고 가드를 내린 권투선수가 결정적인 한 방을 맞은 셈이었다.

그때 상황을 복기해 보니

내 위치선정에 심각하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어서 운신의 폭이 적었고,

미국의 경우처럼 식당 직원이 계산서를 들고 오기를

무작정 기다린 것도 나의 실책이었다.

약속한 사항을 숨 쉬듯 아무런 부담도 없이

어기는 나쁜 친구들.

비단 오늘 함께 걸었던 친구들 뿐 나쁜 것이 아니다.

예외 없이 내가 만나는 친구들 모두 다 그렇다.

나는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건 왜일까?

나도 이제 좀 더 영악해져야 될 것 같다.

나도 이렇게 나쁜(?) 친구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나빠져야 할 것 같다.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나쁠까?

나도 나쁜 친구 중 하나가 되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가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Originally, there was no specific purpose for this trip to Korea.

If the goal is to use the airline mileage to travel to Korea for free before the end of the year, then it can be considered a purpose.

Instead of the planned pilgrimage to the holy land of Israel, which would have required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I chose to go to Korea where I (almost) don't have to pay for airfare.

However, on the day after arriving in Korea, today, I decided to join some high school friends who were walking along the Gangseo Circular Road just because they were doing it. Five friends gather to walk the circular road once a week, and today, they allowed me to tag along, especially for me.

Yeong-il and Dong-hee, who had a memorable and precious experience with me during a mountain hike to Cheonggyesan in the past, and Jeong-min and Chang-won, who I joined during a California trip with other friends, allowing me to enjoy the ups and downs for a week.

In particular, Jeong-min, Cheong-won, and Sang-mu met last year when we lived on Jeju Island for a month, creating lasting memories.

Two of the five friends retired from professorship last year, and two others retired from work a few years ago. Another friend retired from the navy as an officer a long time ago. I also retired last year, so, in the end, six unemployed individuals came together to walk the circular road.

The weather was quite chilly.

We met at Banghwa Station Exit 3 on Seoul Subway Line 5, the meeting point. One friend offered me a hand warmer. The hand warmer conveyed warmth to my cold hands. Through the warmth of the hand warmer, it felt like my friend's heart was flowing into my heart through my hands. The hand warmer warmed not only my hands but also my heart.

Each friend brought snacks to share. The shared snack list during the rest breaks included apples and tangerines, various fruits, sweet potatoes, energy bars, Bacchus jelly, coffee, and jujube tea.

I happily received and ate the snacks my friends shared. Due to my status as someone from the United States, I was exempt from all implicit preparations. In fact, I owed my friends in various ways. So, during the break, I declared that I would treat them to lunch. I wanted to treat my friends to a meal happily, feeling grateful and sorry. At first, there was reluctance to my proposal, but eventually, it seemed that they agreed with my intention.

While walking and resting, we shared stories. The theme was the trivial stories of life that we have experienced and are experiencing. No, it was a story that was too burdensome to be called a theme.

Life doesn't necessarily have to be noble. The appearance of an ordinary, colorless life seems truthful and beautiful. We unanimously praised the space in life that comes after working hard, the freedom of that space. We agreed that this is the golden age of life.

After finishing the circular road walk, we had lunch at a restaurant that specializes in stir-fried squid. However, a problem arose. Although I believed that I was entrusted with the task of calculating the meal expenses, one friend unilaterally canceled that decision without obtaining anyone's agreement. He took care of the meal expenses himself.

It was all my fault for letting my guard down. It was like a boxing player who lowered his guard and received a decisive blow. Upon reviewing the situation, I realized that there was a serious and decisive problem with my positioning. Sitting in the middle, my range of movement was limited, and waiting blindly for the restaurant staff to bring the bill, as is done in the United States, was my mistake.

Bad friends who violate promises without any burden. It's not just the friends I walked with today; all the friends I meet are like that. I am living in the heyday of bad friends.

Whenever I look back on the time I spent with these bad friends, why does a gentle smile spread across my lips?

Now I need to become a bit more wicked. To confront these bad(?) friends, I might have to truly become bad. Living in the heyday of bad friends, how bad am I?

I hope I can become one of the bad friends and that the heyday of these bad friends, where everyone is happy, lasts for a long, long time.

https://hakseonkim1561.tistory.com/3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