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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에 대한 단상(斷想)

해바라기에 대한 단상(斷想)

1.

우리 집에 해바라기 한 그루가 입양되었다.

 

아내가 길거리에 무질서하게 자라던 해바라기를

누구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아내는 일명 '꽃도둑'이다.)

동네 성당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으니

성스러워야 할 일요일이었다.

 

2.

아내는 큰 화분에 해바라기를 옮겨 심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잎이 마르고

비실비실한 것이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조바심을 내는 나에게

아내는

"아무렴 태어나고 살던 곳이 아니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잎이 다시 피고 가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 인간도 모두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 아닌가.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눈물겨운 일이다.

 

3.

7월 한 달 무더위 속에서도

해바라기의 키는 눈에 보일 정도로 자랐다.

그리고 2 미터 가량 자란 지금

제일 꼭대기에 꽃이 하나 피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도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왜 그렇게 안달을 하며 위로만 자랄까?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보려면 

자신의 앞을 바리고 있는 벽을 넘어서야만 했을 것이다.

해를 향하도록 운명 지어진 해바라기는

죽을힘을 다 해서 위로 위로 자라야 했을 것이다.

 

8 월 한 여름날 해바라기는 

일편단심(一片丹心) 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랗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4.

아침부터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내 방의 창문을 통해 나는 해바라기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눈짓을 주려하지 않는다. 

해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해바라기 같이

자신만의 해를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닐까?

 

내가 해바라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듯,

이젠 아이들의 윗모습을 보는 일이 익숙해진다.

 

보고 싶으면

내가 해바라기 앞에 가서 얼굴을 불쑥 내밀면 되는 것을.

 

5.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

키만 컸다.

 

그래서 허리가 꺾이고

고개도 꺾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해에 가까워지니까.

 

나의 해는 누구였을까?.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의 해를 바라기 위해

허리 아프고

고개 꺾이는 삶을 살아왔을까?

 

산들바람에 해바라기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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