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꽃, 그리고 자야 자야 명자야
자야자야 명자야 찾아 샀던 어머니/
청소해라 동생 업어줘라/
어스름 저녁 북녘하늘 별 하나/
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명자 가사 중에서-
2월 어느 날이었던가,
아내와 함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보던 중에
어느 참가자가 불렀던 노래가
내 귀와 마음에 와 감겼다.
-자야 자야 명자야-
음치에 가까운 나도 이 노래의 한 부분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내 나이에 이른 사람들은 거의 이해가 되는
삶의 팍팍함 속에서 살아가는 명자라는 소녀가
잘 자라서 어른이 된 후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노래를 듣는 사람들마다
그 노래를 흡수하는 방법과 감도는
다르고 차이가 있는 법이다.
아내는 그 노래를 들으며 딴(?) 생각을 한 것 같다.
'명자'라는 이름을 가진 꽃나무를
그 노래를 들으며 떠올렸다는 게 나의 추론이다.
지난주에 아내가 Riis park로 산책을 가자고 꼬드겼다.
바닷가로 걸어가면 30 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Riis Park가 있는데
요즈음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에 대비한 공사가
beach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우리 발걸음이
한동안 뜸했던 곳이 바로 Riis Park다.
그런데 Riis Park에는
명자나무 가시 덩굴이 우거진 곳이 두어 곳 있다.
명자나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을 피우는데 이파리와 함께 피어나서
마치 수줍은 처녀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열린 문 뒤에 숨은 것처럼 은근하게 피어난다.
아내는 이 꽃을 그곳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이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처녀꽃, 아기씨꽃나무, 아가씨나무, 연지꽃, 산당화 등의 이름으로
명자꽃을 부르는데
결국 이름이 시사하는 것을 종합하면
명자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가 연상이 된다.
Riis Park에 도착해 보니
가시 덩굴 밑으로 명자나무에서 꽃이 피어 있었다.
아내는 두어 가지 꽃나무를 꺾어서
집으로 모셔왔다.
화병에 물을 담고 꽃가지를 그 안에 담가서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었다.
집 안이 훤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 좋은데 옛사람들은
명자나무를 집 안에 심지 않고 문 밖에 심었다고 하는데
집 안에 심으면 아녀자가 바람이 난다는 속설이 있어서이다.
화병 안에 꽂아 놓은 명자꽃은
수줍게 아름답다.
그래도 께름칙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날도 좋은데 이 화병 베란다에 내다 놓을까?"
"화병에 있으니 그냥 두세요."
노랫말 속의 명자는 어린 시절 엄마 아버지의 심부름과
집안일을 하느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내 아내도 아이들 다섯 키우느라
거의 20 년 이상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다.
그런 아내가 봄이 되어서 여기저기 콧바람 쐬러 가자고 하는데
거절하지 말고 동행을 해야 하겠다.
봄바람에 바람이 나는 것은 지극히 건강한 사람들의 속성이다.
바람은 움직임이고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 수줍음, 겸손이 명자꽃의 꽃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명자꽃은 집안에 두어서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집안에 두면 좋은 덕목을 가진 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가 짙게 끼었다.
나는 화병 있는 곳에 가서 명자꽃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꽃을 보니 마음이 밝아졌다.
나의 아내는 말 그대로 안 해이다.
집안을 늘 해처럼 밝혀주는 아내를 닮은 명자꽃 옆에서
오늘 아침 오래 머무르고 있다.
여전히 창 밖은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닥다리의 넋두리 (1) | 2023.05.14 |
---|---|
유치 찬란한 나의 봄 (0) | 2023.04.25 |
뉴욕 나들이 (0) | 2023.01.26 |
까치 설날, 우리 설날 (3) | 2023.01.24 |
사위들에게 뀌는 알랑방귀 (0) | 202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