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Pizza Day 유감
어제 오후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들어올 때 피자 한 판 주문하고 와요."
기분이 별로였다.
주문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내의 문자는 저녁으로 밥대신
피자를 먹을 것이라는 예고편이고 통첩이었기 때문이다.
3 년만 있으면 미국 생활이 만 40 년이 되는데도
아직도 나의 입은 한국 음식에 고착이 되어 있다.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어야 하고
그것도 저녁은 신앙처럼 밥을 먹어야 하루를 제대로 산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 소중한 한 끼 식사를
상실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나의 심기가 조금 불편했다.
내게 있어서 피자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부득이 먹는 비상식량 같은 것일 뿐이다.
주문한 피자를 먹으며
어제가 National Pizza Day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기야 한국에도 짜장면을 먹는 날도 있다고 하니
미국의 짜장면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피자의 날이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누가 피자의 날을 만들어서
나 같은 피해자를 만드는지 전혀 원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피자의 날에 꼭 피자를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한국에 살고 있다면
나는 기어코 짜장면의 날 짜장면 먹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에 살고 있는 내가
굳이 피자의 날로 지정된 2 월 9 일에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한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위로하거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군말 없이 저녁으로
버섯을 토핑으로 얹은 피자를 먹었다.
치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치즈 맛을 감소시키기 위해
마늘가루와 굵게 빻은 고춧가루(Crushed Pepper)를 얹어 먹었다.
피자를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말은 안 했어도
누구나 그러하듯
마음속으로는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워낙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어서
어디 내 소망대로 풀려 나가야 말이지,
아이들 다섯 키우느라 아내가 손에 물 안 묻힌 날이 며칠이나 될까.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아내의 손마디가 굵어진 건 물론이고
관절염이 주는 고통까지도 마디마디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을-------
그래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National Pizza Day에는 고마운 마음으로
피자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이 날 하루만이라도
결혼할 때 혼자 마음 속으로 했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주고 싶었던
나 혼자 약속을 이행할 수 있으니
어찌 피자와 '피자의 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년엔 아내가 말하기 전에
피자 한 판 주문해서 귀가할 것이다.
저녁으로 먹는 피자로
나는 한 해에 한 번은 아내를 호강시켜주는
남편이라는 못나 빠진 위로를 삼고 싶은 것이다.
매 해 2 월 9 일은 'National Pizza Day!
상기하자 '피자의 날!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글을 찾다 - Valentine's Day의 추억 (2007) (0) | 2021.02.12 |
---|---|
이거 쑥스럽구만 (0) | 2021.02.11 |
옛글을 찾다 - Over the Hill, 내 삶의 희년에 (2008) (0) | 2021.02.03 |
옛글을 찾다 - 은혼의 우리 부부 (0) | 2021.02.01 |
옛글을 찾다 - 눈 (0) | 2021.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