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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옛글을 찾다 - 은혼의 우리 부부

옛글을 찾다 - 은혼의 우리 부부

 

재작년 10월에 우리 부부는 은혼식을 맞았다.

흔히들 말하는 44 반세기를 거의 같은 밥을 먹고, 

한 이불 속에서 산 것이다.

그런데 서로 얼굴을 처음 본 것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하기 전 겨울방학 때였고

아내는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이었으니

실제로 서로 알고 지낸 건 25년에다가 9,10년을 합친 햇수가 된다.

인연이 길고도 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엔 성당 안에서 같이 활동하던 선후배 사이였고

난 그저 예쁜 여학생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가벼운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는 나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자기의 운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필이 꽂혔다는 걸 최근에서야 털어놓았다..

어쨌든 대학 시절에도 가끔 만나기는 했지만

그때는 지금의 아내가 내 운명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순수해서 이 여자와 일생을 같이 한다는 게

마치 하얀 수건에 때를 묻히는 것같이 마냥 죄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아야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던,

미숙한 낭만주의자였던 나는

군대로 떠나면서 이별의 편지를 썼다.

 

하얀 눈송이가 아름다운 것은 녹지 않았기 때문이고

지금 나의 열기를 거두면

영원히 녹지 않는 하얀 눈송이로 내 안에 머물 것이라고 썼던 것 같은데

기억은 희미할 뿐이다.

 

군대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면

칠판에 쓴 분필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듯

그렇게 모든 기억이 먼지처럼 분해되어 사라질 줄 믿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더 뚜렷하게 내 앞에 나타나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리움도 고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 때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이리저리 사선을 긋다 보면

처음엔 희미하던 다보탑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하게 나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속에서 지우려고 하면

더더욱 또렷하게 살아나는 그녀의 모습.

 

그녀는 내 운명이었던 것이다.

 

끊어질 뻔했던 우리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고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내주는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그 척박한 삶을 견뎠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쓰자면

군대 생활에서 나를 지켜준 건 8할이 그녀의 편지였다.

그건 단지 편지가 아니라 그녀의 사랑 담긴 기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군에서 나오던 해 가을에 우린 결혼을 했고

신혼의 몇 달을 달콤하고도 아쉽게 보내고

그녀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리움의 고통을 또다시 맛보면서 기다리다가

나도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야채가게에서 또 세탁소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니

아내에게 결혼기념일이라고

제대로 꽃 한 다발 선물하지도 못하고 세월만 무심히 흘려보냈다.

 

아내는 아내대로 2,3년 터울로 아이들이 태어나니 

10년도 넘게 밤잠 한 번 제대로 못 자면서 피곤한 세월을 살았다.

둘이 마음 놓고 밖에 나가

오붓이 외식 한 번 못하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휘익 지나갔다.

 

그러던 차에 M.E.,  부부주말강습’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10년도 넘게 둘이 외출한 번 못해본 우리의 처지를 잘 아는 처제가

아이들을 봐줄 테니 다녀오라며 신청까지 해주었다.

 

오랜만에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참 많은 걸 느끼고 또 배웠다.

아내를 나의 눈이 아니라 아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단번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지금도 꾸준히 대화하고 노력하면서 

여전히 한걸으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ME 주말, 부부주말강습’을 경험한 후가

신혼시절보다 더 행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집안에서 우리 부부가 다정하게 지내는 걸 바라보는 아이들도 행복해한다..

한 번은 둘째 딸이 대학교에서 연주를 한다고 해서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딸아이의 친구들이 우리 부부에게 우르르 몰려와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참 당황하고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큰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풀렸다.

큰 딸이 동생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우리 부부의 사진과 함께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신혼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엄마 아빠라고 소개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하필 엄마, 아빠를 소개했을까… 하고… 궁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두 딸들은 집을 떠나보니

우리 집이 얼마나 축복받은 가정인지를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것이

우리 딸들의 장래 희망이고 또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올 작년 3월엔

우리 부부도 은혼식 기념을 겸해

미 서부 성지 순례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개척했던 Mission들을 따라가는 순례였다.

장애를 넘으며 목숨을 걸고 씨를 뿌린 결과로

지금은 이 미국에 교구의 숫자만도

거의 200여 개가 된다고 하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부부로 함께 살아가는 일이

서로 한 다리씩 묶고 달리는 2 3각 경기 같은 것이어서

결단코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들어주면서 함께 가면

인생이라는 여정에

부부만큼 다정하고 살가운 동반자가 또 어디 있을까?

 

은혼식을 지난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니, 

쌩떽쥐베리가 했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사랑이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구절인데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을 때는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요즈음은 조금씩 씹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듯하다..

 

아무튼 우리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가나의 혼인잔치에 함께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적 은총이다.

그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 부부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그 어떤 것보다도 부부간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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