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기, 다치지도 않고 골까지 넣기 - Haystack Rock
튤립 농장을 나와서 우리가 향한 곳은
Cannon Beach에 있는 Haystack Rock(건초더미 바위)라고 하는 곳이었다.
한국에 흔한 노적봉을 연상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빠져나온 뒤 튤립 농장에는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길을 가다가
농장의 날씨가 궁금했던 아내가
우리가 갈 곳과 또 다녀 온 곳의 날씨를
검색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럴 때의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맑은 햇살 아래에서 튜울립을 본 것은
분명 운이 좋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를 뜬 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은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쾌감까지 동반했다.
문제는 이럴 때 모든 행운은 자기 때문이라고 우기는
우리 집 최고 존엄 때문에
그 쾌감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분명 이치에 맞지 않음에도 그것이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분명한 팩트는 내가 궁시렁거릴 수 있는
빈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댁의 시집살이는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으로 3 년 이면 유효기간이 소멸하지만
나의 장애 아닌 장애의 세월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는 사실은
쾌감과 함께 내게 지워지는 내 운명의 다른 한 면이다.
묘하게 행운이 따랐던 날씨는
Haystack Rock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가는 길 내내 빗방울이 오락가락 차창을 두드렸는데
바닷가에 도착하니 해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하나
마냥 늘어지게 기분이 좋은 것 만은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그대가 짐작하시는 대로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논리적인 내가
그 분 앞에서는
산뜻하고 명쾌한 대꾸 한마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못내 나를 슬프게 한다.
바닷가의 환한 얼굴의 해는 나를 기쁘게도,
또 답답하게도 만들었다.
Google의 길 찾는 기능은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남기고
매정하게 자기 임무를 서둘러 끝맺음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니
길은 해변을 따라 이어지고
곧 이어 'Dead End'(막다른 길)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더 가서 적당한 곳에서 차를 돌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보통 이런 막다른 골목의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조용해야 할 곳에 시도 때도 없이 외지인들의 차가 들락날락하며
자기들의 사생활을 많은 부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지인들을 반기지 않는 것은 물론
은근히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런 사실을 아는 나는 그냥 그 표지를 지나치려 했는데
그분께서 그리 가자고 해서
혹 마주칠지도 모를 동네 사람들의 적의에 찬 시선을 각오하고
호랑이 소굴로 방향을 틀었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부드러운 존엄의 말투가 더 무섭고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모르고 들어갔다가 하릴없이 방향을 돌려 나오는 차가 옆으로 지나갔다.
물론 그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를 일 이긴 하지만
"가 봐야 별 수 없을 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길 마지막에 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물론 주차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차를 돌려 나오려는데
아내가 잠깐 있으라고 하며 차에서 내렸다.
사진을 찍고 오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5 분 가량 지났어도 그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차 몇 대가 들어왔다 방향을 돌려 나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아내는 우아하게 생긴 한 노년의 여인과 나타났다.
무언가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것 같았다.
그 여인은 바로 막다른 골목에 집을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그 동네 사람이었던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아닌 적과 동행을 하는
아내를 보고 까닭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적대감으로 활활 타 올라야 할 그 부인의 눈은
한 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아내는 내게 창문을 열라고 하더니
그 부인의 집 앞에 차를 대라고 손짓을 했다.
영문도 모르고 얼떨떨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 부인도 눈짓으로 아내의 말을 거들었다.
사태의 전말을 재구성해 보자면 이렇다.
아내는 사진을 찍으려고 해변으로 향하는,
집과 집 사이의 골목길을 가는 길이었고
문제의 그 부인은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마침 골목에서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아내가 그 부인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아내는 우리가 뉴욕에서 왔다는 말을 그 부인에게 했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그 부인도 뉴욕 출신이었던 것이다.
마침 아내는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물어보았는데
귀부인은 머뭇거리다가 자기 집 앞에
주차를 하라고 허락을 한 것이다.
(내가 귀부인에 악센트를 준 까닭을 짐작할 수 있기를---)
그 부인은 남편과 함께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현지인들이 자기들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고,
우리를 보고(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내님)
그 빚을 조금 덜어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부인은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자기 집 앞에 차를 두어도 좋다는 허락을 하고
아주 쿨하게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런 상황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 몇 채 안 되는 막다른 길에 사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엮이지 않은 외지인 중,
그곳에 를 댄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맨 땅에 헤딩하고
상처 하나도 없이 골까지 넣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되지 않는 일을 해 내는 우리 최고 존엄 때문에
좋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좋은 점은 그분의 말을 따르면
이런 경우처럼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기만 그러면 되는데
때로는 나에게 맨 땅에 헤딩을 시키는데
내가 하면 적어도 작은 상처 하나씩은 머리에 생기는 게 상례다.
그런데 답답한 점은 자다가 깨어나서 먹는 떡이
마냥 맛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다가 보면 일어나 떡을 먹는 것보다
떡보다 맛 난 잠을 계속 자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모든 것을 자기 덕으로 돌리는 그 분의 신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날씨도 날씨지만
마침 썰물이어서 바위 근처까지 걸어가서 가까이
대면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튤립 농장에서 묻은 진흙 투성이 부츠를
바닷물로 대충 씻어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존엄과 함께 사는 나를 보고
"전생에 나라를, 그것도 황제가 다스리는 큰 나라를 하나도 아니고 적어도 두셋은 건졌을 거"라고
무책임하게 말을 한다.
그런데 모든 은덕이 다 자기 탓이라고 우기는 걸
그냥 아무 말 못 하고 견뎌야 하는
나의 냉가슴을 이해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법이다.
교황청의 무시무시한 압력에 굴복해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천체가 움직인다고 했던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오면서는"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는데
내가 이런 심정을 토로하면
"복에 겨워서 그런다."는 핀잔만이 되돌아 올뿐이다.
벙어리 냉가슴은 정녕 내가 감당해야 하는
운명인 것인가?
바다로 향한 골목,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서 보이는 바다.
이런 걸 보고
밀당이라고 하는 건가?
바위가 있는 반대쪽 하늘에 구름 가득.
해무가 몰려 올 기세.
마침 썰물이어서
바위까지 길이 생겼다.
이 것이 Haystack ROCK
이 지역 사람들은
썰물 때 걸어서 갈 수 있는 바위 중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고 하는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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