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너는 좋으냐 ? 낙엽 쓰는 소리가.
11월로 들어서면서 낙엽이 땅 위에 그득합니다.
이럴 때면 젊은 시절 외우고 다닌던 구르몽이라는 불란서 시인의 ‘낙엽’이라는 시가 기억나곤 합니다.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요사이 조락의 계절에 이렇게 시작되는 시를 나즉이 읊조리며,
낙엽 뒹구는 거리를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걷곤 했던
철없던 시절의 낭만에 젖어볼듯도 하지만,
그런 낭만은 이미 먼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낙엽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는 이미 낭만이 아니라,
어느 신부님의 수상집 제목처럼 ‘낭만에 초치는’소리로 들립니다.
미국에 온 이후로 낙엽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
얼른 치워버려야 하는 쓰레기와 같은 뜻을 가진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낙엽은 짜증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뉴욕에서 비지네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두려운 존재 중 하나가
뉴욕시의 청소국 직원입니다.
업소 앞에 휴지 조각 하나라도 발견되면 가차없이 벌금 티켓을 발부합니다.
휴지 나부랑이를 찾아내는 그 분들의 시력은 가히 놀랄만합니다.
군대시절 내무사열에서 관물대의 작은 먼지까지 찾아내는 선임하사의 시력은 저리 가라입니다.
아뭏든 요즘같은 불경기에 100달러나 하는 벌금 티켓을 내기 위해서는
양복을 열 벌도 더 세탁을 해야 하니 경제적인 손해도 손해거니와,
하루 종일 그 찝찝한 기분으로 지내야 하는 일이 경제적인 손실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요즈음처럼 낙엽이 땅 위를 점령하고 게다가 바람까지 부는 날이면 신경이 온통 업소 앞에 쏠립니다.
작년 이맘 때였습니다.
그날도 낙엽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대니 얼굴에 뾰로지가 났을 때처럼
온 신경이 업소 앞에 있는 낙엽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업소 앞에는 낙엽이 별로 없었고 ,
오른 편에 있는 델리 가게 앞에는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옆 가게 사람들은 낙엽 치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 델리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랍인들인데 그렇게 짤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점심으로 자기들 델리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을 때는
한 푼도 깎아주질 않으면서도,
우리 세탁소에 와서는세탁비 깎아달라고 하는 말을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 아랍인들의 태도를 은근히 얄미워하고 있던 터인지라,
우리 가게 앞만 야무지게 치우고는
‘너희들 오늘 좀 당해 봐라’
하는 마음으로 낙엽 치우는 일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물론 옆 가게 사람들에게 낙엽을 치우라는 귀띰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지요.
그리고 얼마 후에 벌어질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며
깨소곰을 맛 본 것처럼 고소한 기분으로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낙엽을 치운 지 30분 쯤 지났을까,
시 청소국 직원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밖의 청소 상태가 불량해서 벌금 티켓을 발부해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항의를 하려고 밖을 내다 보니,
비록 자빠지지는 않았어도
그 정도로 놀라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옆가게에 움직이지 않고 고이 있어야 할 낙엽들이 우리 가게 앞에 다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30분 동안 낙엽들과 바람이 짜고는 반란을 일으켰던 겁니다.
100달러 짜리 벌금 티겟과 함께
깨소곰 맛이었던 마음이 한약 삼킨쓴 맛으로 변한 채로 내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은 창피해서 어디 호소할 데도 없었습니다.
다시 가게 앞의 낙엽을 치우는데 지나가는 바람이 귓 전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 입맛 쓰지? 그러길래 옆 가게까지 쓸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눈 질끈 감고 옆 가게 앞까지 쓸었더라면 이런 쓴 맛을 보지 않았을 텐데
속 좁고 옹졸한 마음 때문에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보았습니다.
내 손과 또 손에 들린 빗자루는 내 앞만 아니라 주위도 쓸라고 주어졌음을 잊었습니다.
이웃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무런 조건 없이 눈 한 번 질끈 감고
옆 집 마당까지 쓸어주는 일임을 그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고통 받고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그 사랑을 거저 받았음에도,
나는 그런 사랑을 실청 함에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내 집 마당 깨끗이 쓸었다고 칭찬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 마당을 둘러보지 않았음을,
아니 애써 외면했음에 대해 꾸지람을 들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낙엽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람결에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 너는 좋으냐? 낙엽 쓰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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