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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스페인 여행

도둑놈, 혹은 도둑님 - 바르셀로나에서 겪은 일


도둑놈 혹은 도둑님 - 바르셀로나에서 겪은 일




바르셀로나 가는 길 



"가방이 사라졌다!!!"


처제의 입에서 탄식이 섞인 신음소리가 새어나온 것은

바르셀로나의 한 파킹장에서 차를 대고

막 짐을 들고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가방이 없어졌다니 기가 말힐 노릇이었다.

마드리드를 출발해서 오렌지 산지로 유명한 발렌시아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에

처제의 가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렌트카로 발렌시아를 출발해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때까지

발렌시아에서 산, 아주 맛난 오렌지를

그 가방에서 꺼내 먹었기에 그 가방의 사라짐은

기가 막힌 마술사나

귀신의 소행으로 밖엔 판단할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어둔 밤길이었고

날씨도 제법 쌀쌀해서 창문은 물론이거니와

차문을 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사라진 가방으로 해서

우리가 느꼈던 황당함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황당함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영민함과

그 때까지만 해도 

제법 '살아있던' 나의 추리력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 하고 싶다.


나는 체크 인을 위해 잠시

호텔 부근에서 차를 대고 있다가

파킹장을 향해 출발할 때

처제가 차의 문을 다시 닫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처제는 멀쩡하게 잠겨 있어야 할 문을 왜 다시 닫아야 했을까?-


아차!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악명 높은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에게 

아주 멋지게 당한 것이었다.

의식 속의 안개가 걷히고

드디어 지난 20 여 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정황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호텔에서 체크 인을 마치고

파킹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우리가 마주쳤던 한 명 이상의 사람이 기억난 것이다.

한 명 이상이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은 분명히 보았고

그와 팀을 이루었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자전거를 탄 한 청년이 다가와

우리 차의 조수석 뒷 쪽 창문을 과도하게 큰 소리를 내며 두드렸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보라고 손짓을 해서

마침 거기 앉아 있던 아내가

무슨 영문인가 하고 창을 내렸는데

그 청년은 

"여기는 밤 11 시 이후엔 차를 세우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친절한 건 좋은데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그 친절함에 비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친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상황이 끝난 후에 깨우친 것이었다.


자전거를 탄 큰 소리로 창문을 두드릴 때

누군가 같은 조직원은 낮은 포복으로 우리 차에 접근해서

반대편 뒷 좌석의 문을 슬그머니 열었고

처제의 발 밑에 있던 가방을 

우리에게는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가져갔던 것이다.


열었던 문을 원래대로 닫으려면 소리를 내야 하니

반 만 닫은 채 가방을 든 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말하자면 바르셀로나의 도둑들은

병법 중 36 계 중 하나인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한다) 전법을 사용했는데

그 신묘함은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런 까닭으로 처제는 출발하면서

문을 다시 닫아야 했던 것이다.

친절하게도

가방 가지고 간 사람의 몫이어야 할 

'쾅' 소리까지 대신 내 주면서 말이다.


우리는 스페인 여행을 떠 나기 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피해의 주인공이 될 줄은 기대도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동서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부총장이

바르셀로나 출신인데 

그 곳 출신인 자신도 당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소매치기들이 우굴거리니 

특별히 조심하라고 여행 전에 신신당부까지 했지만

그런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어린 아이에게 당부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준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런 당부는 실현되기도 하지만

당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당부 자체로 머무는 경우도 많은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면 가방안의 내용물이 궁금해질 차례다.

우선 가죽으로 된 그 가방은 가방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것인데

그 가방을 비롯해

처제가 비상금으로 가지고 간 천 달러가 넘는 비상금,

그리고 운전 면허증 ,--- 등등이다.


물건 챙기는 데는 남편보다는 훨씬 우월하다고 믿는 처제는

여권을 자기가 잘 보관하겠다는 

강압과 회유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했음에도

동서는 끝내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몸에 간직하는 고결한 자존심과 용기 덕분에

천만다행으로 여권은 무사했다.

(나 같으면 아내의 회유에 넘어갔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내의 특징이 빛을 발한다.

아내는 '오늘 써도 될 돈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를

삶의 모토로 한다.

비상금이 있으면 미리 가불해서

다 쓰고 잃어버릴 염려를 아예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돈을 써서 행복해,

잃어버릴 돈이 없으니 걱정할 일도 없어----

하여간 아내는 이렇게 산다.


그 맛난 발렌시아 오렌지는

도중에 다 먹어 치웠기에 

다행히 도난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돈을 쓰지 않고 비상금 용도로만 간직하는 처제보다는

없는 돈도 끌어다 쓰는 아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나

망연자실도 잠깐,

우리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가졌다.


잃은 것에 대한 미련의 끈을 자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미련 때문에 

남은 여행을 다 망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가방을 가져간 도둑들에 대한

예찬을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표도 안 내고 물건을 훔칠 수 있는지---"


"마치 기가 막힌 마술 쇼를 본 것 같아."


" 이 정도 실력이면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사실조차도 모를 거야. 우린 알아채기라도 했지."


"그 가방을 가져도 될 만큼 훌륭한 실력이야."


"그 협동심은 또 어떻고, 팀워크가 참 일품이지 않아?."


이 정도 면 도둑놈도둑님이 되어 버렸다.


가방은 잃고 추억은 얻고----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진 도둑님이 만들어 준 이야기 거리 덕분에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때면

수록 맛이 나는 마른 오징어처럼 도둑님들을 반추하며

달콤한 설탕을 넣은 쓴 커피 한 잔을 마시곤 한다.




호텔 근처.

젊은 여자 아이들이 줄을 서 있는 게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EXO'가 온대요."


추운 날씨에도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을 떨면서 기다리게 만드는 힘.


나는 EXO가 누군지 몰라도 

문화의 위대함을 바르셀로나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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