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동피랑 벽화 마을의 기억.
동쪽 + 비랑(벼랑) 이 합쳐진 명칭이 동피랑이라고 한다.
꼬불꼬불 비탈길이 집과 집 사이를 이어간다.
담벼락에 낙서인 듯, 예술인 듯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살림집들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집들을 개조해 만든 카페며 기념품 가게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렇게 부대끼며 살다 보니
이웃끼리 정도 유달리 깊을 수 있고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을 것이다.
좋은 소식은 우리는 그런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나쁜 소식은 그 장면이 하필이면 이웃 간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어쩌랴, 그것이 인지상정인데.
길이 집과 집 사이를 이으며 계속되는데 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은 곧잘 절단되어'
흐름이 막히는 경우가 간혹 있다.
40대로 보이는 여인과 70 가까운 노인 간의 언쟁.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고
노인이라 굽히지 않는 두 사람의 대결이야 말로
용호상박의 경지였다.
모순이라는 말의 어원을
이 두 사람에게 돌려도 무방할 것 같았다.
아무리 싸움 구경이 불구경과 함께
랭킹 1-2 위를 다투는 구경거리라고는 해도
이 머나먼 곳까지 와서 노골적으로
자리 깔고 구경할 수는 없는 법.
귀는 두 사람 싸우는 소리에 기울이며
눈으로는 벽화를 구경했다
결국 대충 두 사람간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짐작하는 선에서
내 호기심은 막을 내렸다.
우리가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
전부터 이미 시작된 두 사람의 언쟁은
우리가 순례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언성이 음악용어 크레센도처럼 세지다가는
두 사람 공히 투티(모든 악기가 큰 소리로 합주하는 음악용어)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의 대결은 음악 형식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중간에 어느 집에서 나온 노인 한 분이
"아니 왜 이웃끼리 싸우고 그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물론 경상도 사투리)
혀를 차며 풀기 없이 흐늘흐늘한중재를 하긴 했지만
본인도 애초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무시를 하는 것처럼 반응을 하지 않고
자기들 일(?)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그 노인은 뻘쭘해져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결국 "법대로 하자!"고
잠정적인 결론을 지은 후에도
고성이 오가는 언쟁은 그칠 줄 몰랐다.
법은 멀고 목소리는 가깝다!
쉽게 자웅을 가르지 못하는 두 사람 사이의 승부의 결과를 알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뜬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축구 경기를 보다가
자리를 떠야 할 때처럼
정말 아쉽고 서운했다.
벽화보다도
두 사람 싸우는 소리가
더 깊고 진하게 내 속에 남아 있는 동피랑에서의 시간들.
동피랑의 벽화를 되돌려 볼 때마다
승부를 가르지 못한 두 사람 대결의 결과는
코만 간지르고는
미쳐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재채기처럼
두고두고 아쉽고 답답한 기억이 되어
함께 묻어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