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따스한 맛.
드디어 성사가 되었다.
그 동안 짬을 내지 못해서 둘 만의 데이트를 꿈만 꾸어왔는데
간절히 원하면 하늘도 감동하는가 보다.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여인과의 은밀한 데이트를 할 수 있었으니
내 심장은 의지와는 상관 없이 콩닥거렸다.
마침 아내도 한국 방문 중이어서
난 아주 마음대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있었으니
모든 조건이 서로 협력하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며칠 추웠던 기운이 살짝 걷히며
따사로운 햇살이 금가루 같이 부서지는 멋진 10월의 어느 날,
오전을 마감하고 오후로 막 넘어갈 때였다.
우린 드디어 일을 내고야 말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동네 공원은 한적하고 햇살은 아주 게으르게 물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가슴도 살랑살랑.
가을이 조금씩 익어가는 못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못 속의 오리들을 보며 좋아했고
마른 낙엽 밟으며 나는 소리에 흥분했다.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자연도, 계절도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은 영원할 수 없는 법.
우리의 은밀한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뒷날로 미루어야 했다.
난 그녀를 차에 태웠다.
출발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보니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속눈썹이 길고 아름다웠다.
나는 다시 그녀의 눈썹에 입 맞추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이윽고 우리의 목적지에 다다랐다.
잠든 그녀를 깨워 차에서 내렸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점심 도시락으로 초밥을 주문해서
오른 손엔 초밥이 담긴 백을 들고
왼쪽 팔로 그녀를 안았다.
차가 있는 곳으로 몇 발짝을 떼지 않았는데
왼 팔과 심장 부근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아 존재의 따뜻한 기분.
그런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점심을 먹고 아침에 새로 갈아입은 셔츠를 빨아
아쉬우리 만치 짧기만 한 가을 햇살에 널면서
그것 참, 그것 참 하면서
존재의 따스함에 심장이 더워지는 그 때의 감격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손녀 Sadie와 함께 했던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반추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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