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Sadie가 낮잠을 잘 시간 쯤이었다.
아내 등에 엎혀 눈을 무겁게 꿈뻑이던 Sadie가
'하부지'하고 칭얼거리며 날 불렀다.
내가 급히 Sadie를 받아 품에 안았다.
성은을 입은 것이나 진배 없었다.
졸릴 때 의지하는 우선 순위는 늘 지 엄마나 할머니여서
나는 늘 Sadie 재우는 일에는 예외였다.
그러니 Sadie가 나를 부른 건 천만 뜻 밖이었다.
나야 횡재한 것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지금은 이 지상에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존재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아이는 곧 내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우리 침대에 눕히고
발 뒷굼치를 치켜 세우고
조심스레 뒤걸음 쳐 방을 나왔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이가 깬 기척이 났다.
급히 달려가 보니 아이가 눈을 반쯤 뜬 채
누군가가 자기를 마라봐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안고 나오니 육아 박사인 아내가
아이를 다시 눕히면 더 잘 거라고 해서 다시 침대로 돌아가
침대에 고이 뉘였다.
나도 아이 옆에 모로 누워
등을 토닥이며 아이를 바라 보았다.
Sadie는 다시 잠을 자긴 커녕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W.B Yates의 시 'Drinking Song'의
첫부분처럼 사랑이 눈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뻐근해졌다.
행복감, 사랑 같은 것이
풍선 속으로 공기가 흘러들 듯,
내 속을 가득 채웠다.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아주 낯선 행복감이 내 속에서 천천히 자라는 것 같았다.
" 그래 다 가져가라.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설사 내 목숨이라도 다 가져가거라."
목숨을 주는 사랑은 신적(Divine)이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내 목숨을 자식들을 위해 바쳐야 한다면
이 것 저 것을 가리고 따졌을 것이다.
이젠 무조건이다.
다 가져가거라.
하부지가 되어서 만나는 하늘 아버지 마음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기 보다는
하느님 하부지지라고 부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적어도 오늘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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