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 농장'은 언제부터인가
미 동북부에 사는 한인 동포들에게는
귀에 술술 들어오는 이름이 되었다.
'늘 푸른 농장'은 누군가가 처음 시작해서
지금은 배와 사과, 포도, 복숭아 같은 과일을 생산하는
꽤 큰 과수원이 되었다.
'늘푸른 농장'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고 맛이 있어서
한국에서 수입해오는 과일을 곁눈질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한 번 만난 적이 없어도
그 농장주는 어느새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사업을 일구어서 큰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걸어갔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함께 갔던 동서가 농장에서 발행한 책자를 읽고 요약해서 들려준 내용이다.)
농장주는 처음 이민 와서 봉제공장에 다니며 번 돈 4만 달러로
농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행착오가 많았음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런데 내가 그 농장주를 존경하는 이유는
빈 땅에 과일 묘목을 심고
과일이 열리기까지의 시간을
견디고 기다리며 살아온 시간 때문이다.
배는 묘목을 심은 후 5년이 지나야 수확을 할 수 있고,
30년이 지나면 그 수명을 다 한다고 한다.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아들과 사흘을 걸었다.
그 사흘.
느즈막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거역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잘 못 들은 거라고 치부하고 발걸을을 돌리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 지옥과도 같은 사흘을 아브라함은 견디고 이겨 냈다.
첫 수확까지의 몇 해 동안의
'늘 푸른 농장'주의 고뇌와 불안은
사흘 동안 겪었던 아브라함의 그것에 못지 않았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늘 푸른 농장'의 신화는 해피엔딩이고
그 상황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 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 위에서 허무한 몸짓을 했던 그 누군가는
결국 수영을 하게 되었고 물위에 뜨는 것 뿐 아니라
물 위를 갈 수도 있게 되었다.
농장주는 아내와 사별하고
상처한 아내의 유언대로 오년 전인가 새로 결혼을 했단다.
결혼기념일이 있는 '배꽃이 필 무렵'에
사람들을 초청해 점심도 대접하고
배도 한 상자씩 나누어주는 '배꽃 축제'를 매 년 하고 있다.
아내에게 '배꽃축제'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는
호기심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아지랑이 같은 호기심.
고등학교 시절 이화여고 학생이면
무조건 이쁘다는 환상까지 겹치며
배꽃축제에 대한 호기심은 아지랑이처럼 봄하늘로 피어올랐다.
과수원을 거닐며 꽃들과 구름과 함께 했던 시간들.
막 초록의 물이 들기 시작하는 숲속의 나뭇잎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과 함께 했던 그 곳은
그래 '늘 푸른 농장'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침 열 시 미사를 마치고
동서네 부부와 함께 출발했다.
해가 나긴 했지만 구름이 넓게 퍼져 있었다.
I95 exit 7a로 빠져나와
시골길을 지나고 오래된 작은 마을을 지나
I95 바로 옆에 농장으로 들어가는 간판이 보였다.
배나무의 묘목을 양쪽에 심고
나뭇가지를 아치처럼 휘어 놓았다.
병충해를 줄이고
바람에도 잘 견디며
배를 수확에도 효율적이라고 한다.
가운데로 차도 다닐 수 있다.
농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민들레.
지난 가을 떨어진 밤 송이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
"안 따갑니?"
배밭 주위의 나무엔 새록새록 잎이 돋고---
풀꽃들도 막 피어나기 시작.
아슬아슬.
무지막지한 트랙터의 바퀴가 지나간 자리를
살짝 피해
다행히 살아 남은 민들레.
사과꽃.
우리집에도 있는데
아직 필 생각을 안 하고 있다.
한 시간 반 거리의 차이.
거리의 차이는 시간의 차이를 내기도 한다.
과수원길을 걷는 아빠와 아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수원길을 걷지도 않고
점심 먹고 배 한 상자 얻어서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고단한 이민의 삶은 여유를 앗아갔다.
지천으로 널린 민들레와 풀꽃들.
복숭아 꽃.
내가 혹하고 정신을 놓았다.
참 예쁘다.
민들레는 정말 여기 저기 많기도 하다.
무릉도원이다.
시간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사람들은 그냥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간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거닐어야
비로소 무릉도원이다.
여유를 갖고 내 마음을 여는 일.
포도나무에도 새 순이 돋았다.
정말 맛이 좋은 포도.
누군가 자신을 버린 헌신 때문에
이 복숭아 나뭇가지에는
꽃이 피고 달디단 열매가 맺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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