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4년 8월 13일 오후 08:57

어제 가게 문을 내릴 때 쯤 비가 부슬부슬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돌아와 저녁으로 아내가 만든 비빔 냉면을 아주 맛나게 먹는데

열어논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비였다.
창문을 닫으며 냉면맛이 주는 행복감에 열려 있던

내 마음의 창도 닫히는 걸 느꼈다.
.
비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거의 악다구니를 쓰며 내리는 것 같았다.
전선이 윙윙대며 우는 소리가 들렸으니 바람도 세차게 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을 자며 송창식인가 불렀던
"창 밖에는 비 오고요 / 바람 불고요"
하는 노래가 뜬금 없이 떠 올라 잠결이지만

속으로 따라 불렀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서 

이리 눕고 저리 돌아 누우며 밤새 뒤척였다.


나는 비가 퍼부을 때면 늘 마음이 비의 강도만큼 어둡고 두려워진다.


비가 오면 낭만적이 되던 나의 심성에 언제부터

어두운 구름이 끼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세탁소에서 비 때문에 생긴 문제에서 비롯된 것 같다.


윗 층이 없는 세탁소의 뒷 부분에 세탁 기계가  있는데
벌써 몇 차례 비가 새서 옷이 젖기도 하거니와
세탁 기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 
몇 천 달러씩 하는 콤퓨터 부품을 구하는 데 드는 경비도 문제거니와
기계를 수리 하는 동안 세탁을 할 수 없어서 급하게 옷을 필요로 하는 손님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들이 젊은 시절 비가 내리면 푸근하고 낭만적이 되던 나의 심정을 바꾸어 버렸다.
비가 세차게 오면 불안한 심정을 어찌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지붕을 고쳐서 문제가 없어진 지금도

비만 오면 그 불안감은

비가 오면 쑥쑥 크는 풀처럼 고개를 들고 사그러들 줄 모른다..


그러니 적어도 내 경우에는 기억이나 경험이

현재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후하게 쳐서 백살까지 산다고 해도 내 인생은 이미 후반전에 접어 들었다.
내 인생의 나머지 반이 행복해지려면 지금부터라도 더 많이 좋은 기억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비가 올 때면 낭만과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고

포근하고 낭만적이 될 수 있도로

지금부터라도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가야 한다.


오늘 저녁에도 비가 내린다면
아내와 촛불을 밝히고 와인 한 잔 할 것이다.
나와 우리의 기억과 낭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