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을 닮고 싶다 - 5월의 숲에서
일요일 점심을 먹고
아내와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베어 마운틴 부근의 산,
정상에 오르면 West Point 육군사관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팰리사이드 파크웨이를 달리다 보니
길이 막혔다.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돌려 Alpine으로 향했다.
늘 가던 길을
거꾸로 돌기로 하고 여정을 시작했다.
5월말의 숲은 이미 나뭇잎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숲은 어두웠다.
가지고 간 렌즈가 그렇고 그런 것이라
걱정이 되었다.
숲 속의 빛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었다.
숲 속에 들어가기 전에 한 장.
아내의 친구가 선물한 가방이기에
인증샷을 해서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숲 속에 들어가자마자
덩쿨꽃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아내의 짐작으로는
찔레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들릴 듯, 말 듯,
은은한 꽃 향기 소리가
숲 속을 떠돌고 있었다.
잎 모양이 아주 단정하고 예쁜 단풍 잎.
가을이면 아주 예쁜 물이 들 것 같았다.
망초꽃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흔히 꽃잎이 흰 색인데
이 녀석은 옅은 보랏빛을 띄었다.
아내가 혹하는 빛깔.
워낙은 개망초인데
나는 이 여린 꽃에게 감히
'개'라는 접두사를 붙혀서 부를 수가 없다.
아내는 이런 풀꽃들을 좋아한다.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꽃들과 눈맞추기 바쁘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하이킹은
이미 틀린 것이다.
풀꽃들과 눈 맞추고
말을 걸다 뵤면 훌쩍 시간이 지날 것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저 물 흐르듯 그렇게.
막히면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다시 떠나면 되는 것.
그냥 풀꽃들과 한 바탕
놀고 간다고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분홍꽃.
이름을 모른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썩어가는 고목 둘레를
담쟁이 덩쿨이 휘감고 있다.
그렇게 풀꽃들과 인사하며 걷다 보니
벼랑과 강물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마침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던 아가씨에게 부탁해서
우리 부부도 한 장.
우리가 서 있던 벼랑 끝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허공 위로 뻗어 있고
가지에는 연보라 꽃이 피었다.
여러 번 지나 갔지만
이 꽃을 본 건 처음이다.
허공 위에 피어난 꽃.
꽃에도 생각과 감정이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에 전엔 배의 선착장이 있었나 보다.
강 옆으론 흙탕물이 파도에 흔들린다.
강물도 구름도
바쁠 것 하나 없이 여유롭게 흘러 간다.
벼랑 주변에 핀 꽃.
수풀과 같이 있으니
아내도 풀꽃 같다.
강 위엔 보트가 지나간다.
곧 사라지고 마는
자취.
처음엔 보트가 지나가며 남긴
물거품이 흰 색이었는데
곧 물색이 되었다.
얼마 후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물만 말없이 흐른다.
아, 삶.
강물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강처럼 깊어지고 있을까,
강쪽을 향해
홀로 선
저 꽃
또 길을 떠났다.
이끼 위에
햇살 한 줄기.
풀섶에서 발견한 꽃 한 쌍.
하나는 흰 빛,
다른 하는는 연보라.
아내는 자기와 나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며
아내는 하얗게 웃었다.
아내가
흰 꽃 같았다.
손톱 만큼이나 작은 꽃들.
누가 일부러 찾아와서 보아주겠니.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폭포에 이르렀다.
폭포 중간의 절벽에서 자란 나무가
전에 본 그 연보라 빛의 꽃을 피웠다.
아내는 폭포 옆에서
불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쉬다가
집에 가자고 했다.
굳이 더 갈 필요가 있을까,
그래, 삶이란 게 그런 거지.
꼭 끝까지 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끼 밭
폭포 주변에 핀 꽃.
물 흘러가듯,
그런 삶.
조금은 그리 물의 흉내를 내어도
흉 잡히지 않을 나이가 된 것 같다.
이끼도 꽃을 피워
저리도 예쁘거늘,
살아가며 꽃 한 송이 피워올린다면
우리 삶도 아름답지 않을까.
욕심 부리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나와 가장 닮은
꽃 한 송이 피우고
이 세상을 떠날 수만 있다면-------
우린 폭포에서 멈추고
더 이상 길을 가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
더 멀리
더 빨리 가야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작은 풀꽃들과 만나며
작은 꽃들이 다 보살이고
성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욕심 같은 것 없이 제 자리에서
자기 만의 빛과 모양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아릅답게 채워가는
풀꽃들과 만나고
내 마음이 불러왔다.
작고 소박한 꽃들로 채워진
5월의 숲,
나와 아내마저도
풀꽃으로 만들어버린
그곳은
말 그대로 하느님의 정원이 아니고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