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우리집
우리집 단풍 나무
지난 주 낙엽을 치우고
Brooklyn으로 나왔는데
주일 아침에 보니
한 주일 동안
단풍 나무 잎이 수북하게 졌다.
빨간 색으로 예쁘게 물들고 난 후 진 낙엽도
미처 물이 들기도 전에 진 낙엽도 있다.
무릇 모든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생물이 그러하듯,
낙엽도, 인간의 삶도
때가 되면 어차피 지고 말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허무의 바다에서
예쁘게 물들어가는 삶이냐
아무렇게나 물들러 가는 삶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나는 어떻게 물들어 가고 있을까.
간 밤에 내린 실비가
장미 꽃에 여즉 머물러 있다.
내 키가 미치지 못해서
발돋움 하고 찍었다.
여름내 흐드러지게 화단을 장식하던
장미꽃도 두 세 송이밖에
남질 않았다.
쇠락의 계절,
그런데 구름 걷힌 아침 하늘은
왜 그리 눈이 시리게 푸르른 건지------
향나무 사이를 뚫고
기어 오른 담쟁이 잎.
그렇지,
여름내 보이지 않더니만
빨간 물이 드니 보인다.
나무 틈새 비집고 기어 오르느라
얼마나 용을 썼겠니.
그래서 그렇게
빨갛게 얼굴이 달아 오른 게지.
윗층 딸이 살던 방의 창문이
단풍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이렇게 해가 좋은 가을날이면
어김 없이 창문을 열어 놓았을텐데------
닫힌 창문에 비친 붉은 빛이
조금은 아린 가을 아침.
아이들이 떠난 집은
나뭇잎이 제 아무리 화려해도
허전하다.
같은 가지에 달린 두 나뭇잎.
서로 다른 것일 뿐,
조금 늦은 것일 뿐.
어떤 이들은 이 둘 사이에
골을 판다.
메울 수 없는 골을-----
붉은 잎,
붉은 열매.
누구일까?
땅 속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이는.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물통엔
뒷뜰의 나무가 잠겼다.
현관 문을 여니
가을 빛이 몰려 들어온다.
낙엽을 배경으로
아직까지 꽃을 피우고 있는 백일홍(?),
아니면 과꽃(?)
정말로 백 날이 넘게
줄기차게 꽃을 피웠다.
다시 낙엽을 치우고,
잔디밭 가장자리로 밀어놓으니
야트막한 담이 생겼다.
10여년 전에 집을 한 층 더 올렸다.
더 올라간 지붕 꼭대기 보다도
훨씬 크게 자란 우리집 단풍나무.
이젠 바람이 세게 불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쓰러지면 집이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내가 단풍나무를 베어버리자고 했을 때
내가 반대를 했다.
가을이면 우리 식구 모두의 가슴에
빨간 물을 들이는
우리 식구와 다름없는 나무를 벨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때문에
집이 어두워졌다.
내년이면 이 단풍나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헤어짐,
사라짐
이런 단어들이 자꾸 머릿 속에서
바람에 낙엽 흩어지듯
어지럽게 흩날린다.
말하자면 세월, 시간
이런 말들도 들으면 아파지는 계절이다,
가을은.
텃밭의 깨밭엔
껫잎이 누렇게 변했다.
씨방도 바삭바삭 말랐다.
씨방을 한 줌 손으로 훑어서 코에 대었다.
향기롭고 고소한 내음이
허파 깊숙히 밀려 들어욌다.
조락의 계절,
소멸의 계절인 가을이
그리 아프지만은 않은 것은
이런 것 때문이다.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도
씨가 남아
희망의 불씨로 남는다.
자연, 혹은 신께서 마련한 선물이다.
내 삶도 들깨 씨처럼 익어가며
마를 수 있으려나.
내 삶의 가을,
바람이 날 스치고 지나갈 때,
들깨같은 향기도 함께
흩날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